“몇 명에게 노리개로 이용당했는지 생각하면 모든 게 긴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장자연(당시 29살)씨가 생전에 지인 전아무개(31)씨한테
친필로 써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에는, 장씨가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순간들이
아프게 기록돼 있다. 8일 <한겨레>가 입수한 편지를 보면, 장씨는 “힘든 건 당연한데 술접대
자리까진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같이 모두들 몸을 요구하니까 정말 미칠 것 같다”며고통스러워했다.
장씨는 편지에 “김 사장(당시 기획사 사장)이 옷값을 주면, 새로운
옷이 바뀌면, 또다른 사람을 술접대, 정말 너무 잔인하고 마약 같은 거에 취해서 장난 아냐. 얼마나
무서운지…하라는 대로술접(대)·성(상)납,
지금까지 고통당한 창녀처럼 모든 게 악몽이었음”이라고 적었다. 장씨는 지인 전씨가 지어줬다는
‘설화’라는 필명으로 쓴 50여통(230여쪽 분량)의 편지에 그동안의 참혹한 순간을 빼곡히 기록했다.
장씨는 어머니의 기일에도 술접대에 나가야 했다며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언론사, 방송사,금융사,
피디(PD), 감독, 기획사 대표들…엄마
제삿날에도 난 변태×, 중독자들에게 술접대 ×꼴 당하고….” 특히 편지 내용을 보면 장씨한테 이런
일이 무려 1년6개월 동안 계속됐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유명 연예인 자리가 한뼘 앞으로 다가온 듯한 상황에서 기획사 쪽에
얽매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도 많았다. “피하고 싶어도…내 관련 약점은 다 만들어 놓았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설화 자연이. 정말로 모두 다 죽여버리고 싶어.
꿈속에서라두….”
편지에는 장씨가 성접대를 했다는 기업·언론사 대표의 이름과 신상
정보를 따로 기록해 뒀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도 있다. 장씨는 편지에 “기획사 대표 6명, 대기업
대표 그리고 간부들 6명, 금융업체 간부 2명, 일간지 신문사 기자 출신, 아이티 ○○신문사 대표
그리고 간부 2명, 일간지 신문사 대표 2명 <○○일보> 등, 드라마 외주제작사
피디 7명, 영화 등 감독 8명, 전속계약 전과 계약하고 소속사 사장에게 성(상)납은 기본으로
했다”고 적었다. 일상적인 접대 자리를 빼고, 장씨한테 접대를 받은 언론·방송·금융계 등의 고위
인사만 31명에 이른다고 장씨는 편지에서 폭로했다. 장씨는 또 “지금은 (31명) 이름만 적어서
보낼게. 감독·피디들은 가장 마지막에 따로 쓸게”라고 적어, 성접대를 받았던 이들의 명단이
존재함을 암시하기도 했다.
과거 경찰 조사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장씨는 소속사 3층 밀실방
등에서 술파티, 환각파티를 벌여야 했다는 내용도 적시했다.
자신의 비극적인 ‘자살’을 암시하는 대목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장씨는 “계약기간은
아직 1년 넘게 남았는데 숨이 막혀 미칠 것 같고, 방법이 없어”, “죽으면 모든 게 끝날 수 있을
거 같은데…살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적었다. 결국 장씨는 2009년 3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