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손들었다 그의 손맛에…

국가대표 자장면 춘장’ 60년… ‘사자’ 영화식품
시카고의 명 중국음식점인 ‘대양장 내복 사장은 춘장(키워드 참조)만큼은 꼭 한국산 ‘사자표’를 쓴. 그는 “사자표 아니면 자장면의 깊은 맛이 안 난다”고 했다. 대양장은 냥 중식당이 아니라 ‘한국식 중식당’이다.
뉴욕의 , 보스턴의 북경반 같은 ‘한국식 중국집’은 미 곳곳 퍼져 있고, 일본에도 않 숫자가 있. 들은 처음엔 교민을 . 하지만 지금은 현지인도 ‘한국식 중국음식’을 찾아 몰려든다.
외국인 고객을 끌어 바탕에는 한국식 을 만들어낸 ‘한국식 춘장’이 있다.
◆ 충성도 높은 사자표 고객들
중국 자장면은 있지만 ‘한국식 자장면’은 없다. 중국의 춘장(사실은 첨면장)은 우리와 달리 검은색이 아닌 렇거나 허여, 맛도 다소 달 텁텁하다. 조선호텔 중식당인 ‘호경전’의 조내성 주방장은 “한국식 춘장은 1940년대 말 한국의 화교(華僑)가 캐러멜을 넣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냈다”면서 “주방장들은 향미(香味)뿐 아니라 볶을 때의 손맛도 사자표에 길들여져 있다”고 말했다.
사자표 춘장을 만드는 영식품은 1948년 화교 1세인 고(故) 왕송산 회장이 창업했다. 왕 회장이 만든 한국식 춘장은 지금 20개 가까운 경쟁 제품 물리치고 200억원에 이르는 춘장 시장 절대 강자 자리를 60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최근 기인 대상이 ‘품질, 가격, 서비스에서 모두 앞서는 제품’이라며 업용 춘장 시장에 도전 내밀었만 고전 중이다. CJ 10여 전 춘장 시장의 문 두렸다 항복하고 말다.
대기업조차 꼼짝 못하는 이유는 사자표에 뿌리깊 ‘고객 충성도’ 때문다. 최 몇 가지 때문에 대상 춘장으 바 동보성’(서울 남산) 공헌장 수석주방장은 “바로 바꾸지 않고 대상 춘장을 섞는 비율을 20%, 40%씩으로 점차 늘려가고 있”면서 “사자표 맛에 익숙한 손님들이 느낄지 모를 ‘충격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의외의 길 포기고 이 화 3세 사장
지난 24일 문래 ‘영장유공장 았다. 왕학보(王學輔·45) 현 사장은 아파트 가운데 있 나지막한 붉은 벽돌 건물의 무실 앉아 있었다. 60년대 초등교 분위기. 화교 3세인 왕 사장 울에서 교학교를 업하고, 대만으로 가 립 를 마친 뒤 전의로 일했다. 거기까진 “대만에서 아지 말고 자리 잡고 살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잘 지킨 셈이다.
그러나 어느날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의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만든 가업(家業)을 쉽게 포기 수 없었기 때이다. 장만 고집하는 유 묻자 그는 “처음엔 간장도 했지만 60~70년대에 화교에게 주어진 갖가지 제약 때문에 사업을 키울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춘장에만 전 다 말했다.
수십 년간 개인사업자로 머물다 최근에야 ‘영화식품주식회사’라는 법인을 만들었고 김포에 새 공장도 짓고 있다. 할아버지가 만든 춘장 덕분에 세계 곳곳에 한국식 중국집이 성업하고 있어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그는 그저 “그러니 지켜야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실 춘장 시장은 정체(停滯)하고 있다. 정에서 춘장을 별로 쓰지 않고, 자장면을 최고로 쳤던 어린이들조차 이제 넘쳐나는 다른 먹거리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장은 원재료나 제조공정 대부분이 간장, 된장과 유사해 장유(醬油)업을 하는 기업은 다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다.
“맛은 우리가 곱니다. 대기업 이름을 달아 납품했다면 매출을 몇 배로 늘릴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업과 우리 (사원)를 지키는 것 말고는 더큰 꿈은없어요.”
jja jang
[키워드] 춘장: 자장을 볶을 때 쓰이는 검은색 발효장. 국어사전에도 나지 않는 춘장의 어원은 중국의 ‘첨면장(甛麵醬)’이라는 설이 많다. ‘첨면장’을 ‘첨장’으로 여 부다가 ‘춘장’이 됐다는 것. 밀가루와 콩, 소금으로 발효시켜 만들며 간장, 된장과 공정이나 재료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