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박원희(23)씨는 이달 초 수입 화장품의 스킨 샘플 10개(개당 11㎖)를
인터넷으로 5만5000원에 구입했다.
원래 이 제품의 정가는 150㎖에
14만5000원으로 ㎖당 966원꼴. 하지만 박씨의 구입 단가는 ㎖당 500원으로 같은
제품을 반값에 산 셈이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정품 화장품을 사 본 적이 없다. 샘플을 사서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란 사실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박씨처럼 화장품은 물론 유아용품.기호식품 등의
샘플만 사서 쓰는 '샘플족'이 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불황 속에 가계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의도와 큰 부담없이 신상품을 써 보려는 소비심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 수백억원대로 성장한 샘플 시장=대한화장품협회는 샘플 화장품만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1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다 소규모 개인판매상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안정림 대한화장품협회 이사는 "샘플 시장이 약
500억원에서 많게는 7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지만 정확한 거래 실태는 아직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회사별 샘플 신청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샘플도 맞바꾸는 인터넷 카페가
생겼다. 백화점 매장에서 정품을 구입하면서 샘플을 공짜로 얻은 뒤 품질 불량을 이유로
정품만 반품하고 샘플은 자신이 갖는 '얌체족'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잘 맞는지 검증기간이 필요한 이유식.기저귀 등은 샘플족들의 주요 쇼핑
품목이다. 7개월 된 아이가 있는 주부 김유미(32)씨는 "매번 이유식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배송비를 조금 물더라도 아이에게 샘플만 먹이는 편이 싸다"고 설명했다. 이유식
업체에선 1~2개월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배송비 6000~7000원만 내면 샘플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여는데 이 기회를 노리는 주부가 많다. 주부들끼리 이때 받은 샘플을
거래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100일~6개월 사이 아이가 먹는 이유식은 18g짜리 샘플
60봉지가 2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540g짜리 한 캔이 1만7000원 정도 하는
정품보다 훨씬 싸다. 신제품을 샘플로 배포하는 커피.생식.애완견용 사료 등도 샘플족의
관심 대상이다.
◆ 고심하는 업계=샘플 판매상은 중간 판매상에게서 샘플을 대량으로 구입해 소비자에게
내다 판다.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오히려 정품 판매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판매 전략상 샘플 제작을 중단하기도 힘들다.
화장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 중간거래상.소매상으로 물건을 넘기는 순간 소유권이
이전되기 때문에 샘플 판매에 대해 법적 대응이나 제재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체들은 유통 과정에서 샘플이 대량으로 샘플 판매상에게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샘플을 정품 안에 포장해 넣거나 길거리 마케팅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건네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뚜렷한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 실속 챙기려다 부작용 겪을 수도=한국소비자보호원에 올 들어 접수된 화장품 샘플 관련
피해 신고는 한 달에 20여 건으로 전체 화장품 관련 신고 중 10% 정도다. 이는
지난해 대비 세 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대부분 샘플에 이물질이 들어 있었다거나 사용
후 피부염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샘플은 피해보상.환불이 안 되는 만큼 문제가
생겨도 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다.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김효정씨는 "샘플에는 제조일 등의 표시사항이 의무화되지 않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쓰게 될 우려가 있다"며 "샘플은 어디까지나 시험 삼아
써 본다는 생각으로 사용해야지 샘플만 계속 쓰다간 자칫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호정 기자
2006.10.26 05:23 입력 / 2006.10.26 05:5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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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oins.com/article/2487422.html?ctg=1200
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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