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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석 앞에서 '꼴림에 대하여' 를 읊다
충북 제천 여행길에서 갈색 가을을 만나다

 내가 꼴린다는 말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마음속 냉기 풀어내면서
 빈 하늘에 기러기 날려보내는 것

- 함순례의 '꼴림에 대하여' 일부

▲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서 있는 남근석. 야릇한 기분도 들지만 자연의 신비함도...

나는 지난 11일 충청북도 제천시에 일을 보러 가는 친구를 무작정 따라나섰다. 한동안 팍팍한 일상에 발이 묶여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사는 마산에서 3시간 반 걸려 도착한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마을. 거기서 천년고찰인 무암사 쪽으로 더 올라가서 낮 4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차에서 내렸다.

단풍이 곱게 물든 무암사 입구를 지나 까치성산(845.5m)과 동산을 이어 주는 새목재로 가는 길은 온통 갈색 세상이었다. 떨어지는 것의 안타까움에 길들여진 탓인지 낙엽이 수북이 깔린 갈색 가을의 풍경은 늘 쓸쓸함을 주는 것 같다.

함순례의 '꼴림에 대하여'를 떠올리다

▲ 떨어지는 것의 안타까움에 길들여진 탓인지 갈색 가을의 풍경은 늘 쓸쓸하게...

간밤에 비가 내렸을까.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서도 촉촉한 물기가 전해져 왔다. 그 젖은 느낌이 괜스레 내 마음밭마저 외롭게 적신다. 어느 틈에 슬며시 내 발등에 내린 나뭇잎 하나. 잠시 그 나뭇잎 하나에 귀 기울여 늦가을의 이야기 한 토막 듣고 싶었다.

동산(896.2m)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그 가운데 이구동성으로 동산을 대표하는 바위로 소개하는 남근석을 보러 가기로 했다. 무암사 입구에서 20분 남짓 걸리는데 꽤 가팔랐다. 게다가 남근석 가까이에는 계속 바위라 묶어 둔 로프를 단단히 잡고 올라가야 했다. 혼자서 웬 청승을 떨고 있나 싶기도 하고 슬그머니 겁도 났다.

▲ 남근석.

높이가 3m 정도 되는 거대한 남근석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서 있었다. 야릇한 기분도 들지만 자연의 신비함도 느껴졌다. 마침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 나도 서둘러 그 신기하게 생긴 바위를 '디카'에 열심히 담았다.

▲ 아스라이 보이는 천년고찰 무암사 위에 가을 햇살이 나른한 듯 졸고 있었다.

마치 동산의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는 듯한 우람한 남근석을 뒤로 하고 나는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스라이 보이는 무암사의 한가한 풍경이 왠지 정겹게 와 닿았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무암사에는 유명한 소 부도(浮屠)가 있다.

의상대사가 절을 세우려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힘겹게 나르고 있었을 때 소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해 주어 손쉽게 절을 지을 수 있었다 한다. 얼마 뒤 그 소가 죽어 화장을 했더니 놀랍게도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소의 불심에 감동한 대사가 사리탑을 세워 주었다는 거다.

가을이 짙어 가는 무암사 입구에서 친구와 다시 만났다. 우리는 '작은 금강산'이라 부르는 금월봉(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 잠깐 들렀다가 마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금월봉은 지난 1993년 한 시멘트 회사의 점토 채취장에서 시멘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흙을 파다 우연히 발굴되었는데, 그 지역 이름인 금성면과 월굴리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 금월봉은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 그 모습을 드러낸 바위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바위산이란 점에서 금월봉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밀을 간직한 채 땅속에서 오래 잠자고 있던 유적 발굴의 떠들썩한 속보를 접하는 듯한, 그런 흥분과 기대감 같은 게 느껴졌다.

기암괴석이 뾰족뾰족 솟아 있는 생김새가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쏙 빼닮았다는 금월봉. 아직 금강산 근처도 못 가 본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작은 금강산'이라 부르는 금월봉.

2004년에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장길산>에서 장길산이 금강산에 올라 무예를 갈고 닦던 장면이 그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또 몇 해 전에는 병신춤을 추는 공옥진 선생이 거기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철망에 걸린 녹슨 햇빛보다
오래, 오래 버티던 가랑잎이
굴러떨어진다

가을,
따돌려지는 듯한
편안함

- 황인숙의 '가을' 일부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도 여행처럼 가슴 설레며 살 수 없는 걸까. 짧은 여행을 끝내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차창 밖으로 11월의 가는 햇살이 아름다운 사선(斜線)을 그으며 달려오는 듯했다.

▲ 말라 버린 이파리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가을이 가고 있었다.

무엇이든 왔던 것은 가게 마련이다. 말라 버린 이파리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어느새 가고 있는 가을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문득 시인 황인숙의 멋진 시구가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김연옥(redalert) 기자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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