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정/도쿄특파원

일본이 전후(戰後) 최장기 호경기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22일 일본 정부가 발표했다. ‘전후’란 전┒떠퓽?붙인 것은 전전(戰前), 즉 1945년 패전 이전에 더 긴 호경기가 있었다는 뜻인데, 학설로 존재하는 19세기 말 64개월간의 장기 호경기를 말한다.

이 경기는 1892년에 시작돼 1898년에 막을 내렸다. 그 기간에 청일전쟁(1894~5년)이 끼어있는 사실에서 ‘전쟁 특수(特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에서 전쟁 배상금으로 받은 3억6000만엔은 당시 일본 예산의 4배, 일본이 쏟은 전쟁 비용의 1.5배에 달했다고 한다. ‘전쟁 장사’로 폭리를 취한 셈이다. 이 돈이 뿌려지면서 일본에 긴 호경기가 이어진 모양이다.

알다시피 청일전쟁은 우리나라를 누가 먹느냐를 두고 벌인 전쟁이다. 한반도가 싸움터였다. 우리가 피해를 본 것은 물론,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에 먹히는 비극으로 연결됐다. 우리 입장에선 보통 기분 나쁜 호경기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기분 잡치게 만드는 호경기는 1954년 12월부터 57년 6월까지 31개월 동안 이어진 ‘진무 경기’다. 전후 첫 번째 초대형 경기였던 진무 경기 동안 일본은 미국의 원조경제에서 명실상부하게 독립하는 발전을 이뤘다. 이름도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초대 일왕 ‘진무(神武)’에서 따왔다. 일본 정부가 1956년 경제백서에서 ‘이제 전후(戰後)는 끝났다’고 선언할 정도였으니 당시 흥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경기의 발판이 우리 6·25전쟁이다. 일본은 참전 미군에 군수 물자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축적했다. 전차를 수리하면서 중공업이, 군복을 공급하면서 섬유업이 부활하는 식이었다. 6·25를 통해 일본이 누린 직·간접 특수(特需)는 46억달러로 추산된다. 10여 년 후 한국 경제 근대화의 종자돈이 된 일본 청구권 자금이 8억달러(무상 3억달러) 규모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순간적으로 분노와 허탈감이 교차할 정도다.

이번에 기록을 경신한 호경기에서 일본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 체감은 크게 늘어난 기업의 고용이다. 꼬리를 물고 들어가면, 고용을 일으키는 원인은 기업의 왕성한 국내 투자, 왕성한 국내 투자를 일으키는 것은 왕성한 해외 수요, 즉 수출에 있다. 물론 그 한복판에 있는 것이 중국 경제다. 58개월의 이번 호경기 동안 일본의 중국 수출은 2.88배나 늘었다.

하지만 ‘중국 특수’에 묻혀 잘 거론되지 않는 특수가 있다. 한국 수요다. 같은 기간에 일본의 한국 수출은 1.89배 늘었다.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무역 흑자도 2001년 72억달러에서 작년 227억달러로 덩달아 3배 이상 폭증했다. 이유 가운데에는 우리 기업들이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에 좀처럼 투자를 일으키지 않은 사실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호황도 아닌 우리가 도대체 왜 일본을 먹여 살리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또 바보짓 하는 게 아닌가’ 겁부터 난다.

어차피 경제에 양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불행이 이웃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한·일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하는 빈도가 너무 잦으면 문제다. 더욱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백발백중 미련한 지도자 탓이라면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반성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일본 호경기를 보면서 요즘 솔직히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선우정·도쿄특파원 su@chosun.com
입력 : 2006.11.23 22:47 09'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11/2006112304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