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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주 산악지대에서 폭설에 고립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제임스 김이
생전에 두 딸 새빈(右), 페넬로페(左)와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김씨는 구조를 요청하러 가던 중 숨졌으나 부인과 두 딸은 사고
발생 9일 만인 4일 극적으로 구조됐다.[오리건 AP=연합뉴스] |
폭설에 갇힌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구조 요청에
나섰던 미국의 한인 제임스 김(35)씨가 6일(이하 현지시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조난 12일 만에 자신의 차에서 8㎞가량 떨어진 산속에서였다.
대대적인 수색작업 속에 그의 생환을 손꼽아 기다리던 미국인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CNN.폭스뉴스 등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김씨의 시신 발견 소식을 현지에서 긴급 뉴스로
전했다. CNN은 '가족을 구하기 위한 초인적인(superhuman) 아버지의
노력'이란 제목으로 "김씨가 아내와 딸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폭설에 덮인 돌투성이의
가파른 산길을 헤쳐 나갔다"며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높이 샀다. 실제로 그는
구조대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가 있었다. 구조에 실패한 한 이유다.
그는 인터넷 웹진 시넷(CNET)의 선임 편집장이었다. 그의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만든
추모 웹사이트에는 애도의 글이 넘쳐나고 있다. 7일 자정 현재 1300여 건의 추모글이
올라왔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던진 남편과 아버지가 사라진 세상을 살아가야 할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울었다" "이번 일만큼
슬픈 일은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미국인 아내 캐티(30.사진)가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옷가게 앞에도 촛불이 켜진
가운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꽃다발과 카드가 수북이 쌓였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의 홈페이지에는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나섰던 김씨네 얘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정말로 가슴 아픈 이야기다"라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김씨는 최신 전자제품을 써보고 평가하는 글을 시넷에 올리는 게
주업무였다. 틈나는 대로 아내의 옷가게 일도 거들었다. 주변에서는 그를 항상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패밀리 맨(family man)'으로 기억했다. 김씨 커플은 학창시절
파티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 조난 경위=김씨 부부는 어린 두 딸(네 살, 일곱 달의 두 딸)을 데리고 지난달
17일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사브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집을 나섰다.
이들이 사지로 접어든 것은 지난달 25일. 이날 포클랜드에서 친구를 만난 뒤 숙박지인
골든비치로 향하던 중이었다. 목적지로 가려면 42번 도로를 타야 했으나 길을 놓치는
바람에 험준한 시스키유 국립삼림지대의 산악도로로 접어들었다. 불행하게도 그때 폭설이
쏟아지면서 차가 눈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들은 차 안에 있던 약간의 과자와 과일로
연명했으며, 이마저 떨어지자 캐티는 큰딸에게도 자기 젖을 먹였다. 휘발유를 아끼기 위해
밤에만 차의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떨어지자 타이어를 태우며 한밤중에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를 견뎠다.
회사 동료들은 김씨가 돌아오겠다는 지난달 27일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자 다음날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은 김씨가 마지막으로 신용카드를 쓴 로즈버그의 식당을 중심으로
수색작전을 폈다. 100여 명의 구조요원과 구조견, 헬기 등이 동원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는 조난 7일째인 2일 아침 구조를 요청하겠다며 가족을 두고 폭설로
덮인 산길을 나섰다. 차 안에 있던 세 모녀는 조난 9일째인 4일 오후 수색 헬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캐티가 우산을 흔드는 걸 헬기가 발견했던 것이다. 캐티는
발가락에만 동상을 입었고 두 딸은 큰 탈 없이 구조돼 언론들은 '기적의 생환'이라며
가족의 휴먼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 수색에 동원된 장비=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이 있는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는 열추적
장치와 적외선 전방 감시장치를 장착한 키오와 헬기 및 인명구조용 블랙호크 등 4대의
헬기가 동원됐다. 이 중 3대는 항공우주 관련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 스펜서
김씨가 개인 비용으로 투입했다. 여러 대의 설상차(雪上車)와 4륜구동 차량도 동원됐다.
방수복을 입은 수상구조팀이 고무보트 두 대에 나눠타고 주변 강을 뒤지기도 했다.
[namjh@joongang.co.kr]
2006.12.08 04:34 입력 / 2006.12.08 05:45
수정 http://www.joins.com/article/2530710.html?ctg=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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