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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i (베르디) -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1. <라 트라비아타> 에 관한 이야기
 

*원작은 뒤마 피스의 <춘희>

'트라비아타'는 '길을 벗어난, 정도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여인'을 의미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 (뒤마 페르라고 함: 아버지 뒤마라는 뜻)의 아들인 뒤마 피스 (아들 뒤마라는 의미)가 24세 때 쓴 소설 <춘희>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체는 마리 뒤프레시스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원작에서는 비올레타가 마르그리트 고체, 알프레도가 아르망이다.

실제로 19세기 중반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파리 사교계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마리 뒤프레시스를 본 사람은 그녀가 전세기의 궁녀 (왕의 첩)이 아니면 공작 부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다고 기록했다.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의 서문을 쓴 저널리스트 쥘 자냉은 그녀를 본 인상을 다름과 같이 말했다.

'그녀가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을 보면 그녀는 날 때부터 머리에 관을 얹고 발치에 추종자를 달고 태어난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 고급 여인들의 모임에서도 이 여인보다 더 아름답고 이 여인만큼 장식품과 드레스와 언어가 조화를 이루는 여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녀의 살롱에는 부유층만이 아니라 문학계의 거물인 위젠느 슈, 알프레도 드 뮈세 등도 왕래했다. 리스트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리스트의 연주가 자신을 매혹시켰다고 말했고 리스트는 초면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여인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다.

그녀의 여권에는 그녀가 1미터 65센티 혹은 67센티미터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로 보아도 작은 키는 아니며 뒤마 피스에 의하면 '아주 큰 키'에 속했다. 불륨은 없었고 현재 남아있는 그녀의 초상을 보아도 폐를 앓았던 만큼 어딘가 병약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섹시한 여인은 아니고 문학적 교양이 사교계의 필수적 조건으로 지배하던 19세기 부르조아 사회의 이미지에 맞는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노르당디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알퐁신 프레시스였는데 14살에 가출해서 파리에 와 험한 일을 하며 살았고 학생가에서 몇몇 학생과 동거하기도 했다. 어느 무도회에서 그녀는 레스토랑 주인의 눈에 띄었고 그를 통하여 그녀는 젊은 드 기쉬 공작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로써 파리 사교계에 등장할 발판을 마련하고 이름도 세련되게 마리 뒤플레시스로 고쳤으며 작가와 예술가들, 부유층들이 모이는 밤의 사교계에 여왕으로 입지를 굳혀갔던 것이다.

뒤마 피스는 그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전에 아주 유명했던 아버지의 이름 덕을 보았고 마리 뒤프레시스의 살롱에 왕래하게 된 것도 부친의 명성 덕분이었다.

뒤마는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기침을 하는 그녀를 따라 침실로 갔고 거기서 피가 담긴 은그릇을 보았다. 건강을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그는 동정심 섞인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거절하나 조건을 붙여 그와 동거하기로 약속했다. 그녀의 행동을 감시하지 말 것, 절대적으로 그녀가 마음대로 행동할 자유를 줄 것 - 뒤마는 그 조건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동거를 했는데 그 때가 20세였다.

그녀와 산지 몇 주만에 그는 빈털털이가 되었고 결국 먼저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헤어져 부친을 따라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여행을 떠났고 마리는 부유한 에두아르 페레고 백작을 만나 이듬해 런던에서 결혼했다. 그러나 병이 깊어져 1년만에 죽고 말았다.

마리가 죽은지 1주일 후,1847년 2월10일 그녀의 사망소식을 들은 뒤마가 파리로 돌아왔다.그는 그녀의 유품이 경매되는 것을 알고 그녀가 살던 집에 찾아가 소설 <마농 레스코>를 발견했다. 그녀가 특히 좋아했고 자신도 감명을 받았던 소설이었다. 경매가 있은 후 그녀는 마리 뒤플레시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것을 결심한다. 이리하여 마르그리트 고체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춘희 (동백꽃 아가씨) >를 쓴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사실 동백꽃 뿐 아니라 어떤 꽃도 싫어했다고 한다.

1848년에 발행된 이 소설을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래서 희곡으로 각색할 것을 결심하고 1주일만에 써내려갔다. 하지만 극장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이 새 공화국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이복 동생의 힘을 빌어 드디어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고 연극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실패로 끝났던 초연
대본이 완성되었을 때 마침 <일 트로바토레>의 초연을 위한 연습과 겹쳐져 베르디는 그쪽을 지도하면서 이 곡 작곡을 해야 하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지친 몸으로 그는 <라 트라비아타>에 전념하여 짧은 기간에 작곡을 마쳤다.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막을 올렸는데 이 초연이 실패한 이유는 상당히 희극적이다. 즉 여주인공의 거대한 몸집이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초연을 담당한 소프라노 살비니-도나텔리의 비대하고 육중한 몸집은 폐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으로선 너무나 건강하고 뚱뚱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끝에 가서 의사가 환자를 보러 와서 그녀는 폐병 마지막 단계에 와 있으며 앞으로 몇 시간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 때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산더미 같은 몸집으로 졸도해서 쓰러지자 주위에 자욱한 먼지가 운무처럼 피어올라 그녀의 뒤에선 의사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따라서 관객들은 원래는 가슴이 미어지게 애잔한 장면이어야 할 여기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아주 터놓고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이다.

베르디는 소프라노 도나텔리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으며 자기가 원하는 소프라노를 물색해서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려워졌고 그는 초연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을 찾아보자면 당시 청중들은 17.8세기에 낯익었는데 현대(당시)에다 이야기를 펼친 것이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여주인공의 사회적 지위가 창녀라는 점도 큰 반발을 산 요인이 되었다.

1년 후 베르디는 자기가 찾는 요인을 갖추고 있는 가냘픈 소르파노 스페지아를 기용하고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되는 부분을 완화하고 제르몽 역의 고음 부분을 통상의 바리톤 수준으로 낮추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결국 대성공을 했다. 그 이후로 오늘날에는 비제의 <카르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연횟수를 자랑하는 오페라로 손꼽히고 있다. 

 

2. 줄거리
 

* 작곡: 주세페 베르디(G. Verdi, 1813-1901)

 * 대본: 피아베(F. A. Piave)가 씀 (이탈리아어)

 * 등장인물:  비올레타 발레리 (Violetta Valey:  파리 사교계의 밤의 여왕) S
                
                      알프레도 제르몽 (Alfreado Germont:  그녀의 연인) T
               
                      플로라 베르아 (Flora Bervoix:  그녀의 친구) MS
               
                      조르주 제르몽 (George Germont:  알프레도의 아버지) Br
               
                      두폴 남작 (Douphol:  비올레타의 보호자) Br
             
                      의사 그랑빌 (Grenvil) B
             
                      안니나 (Annia  비올레타의 하녀) S

 * 때와 곳: 1840년경 파리 및 그 교외

 *초연: 1853. 3. 6 빈

 

 - 제 1 막 -

파리에 있는 비올레타의 싸롱
막이 오르면 1830년대의 아름다운 파리의 싸롱으로 이는 비올레타의 호화로운 아파트이다. 지금 즐거운 파티가 한창이다. 이 파티석상에는 비올레타의 절친한 친구인 플로라, 열열한 추종자인 두폴남작, 그리고 주치의인 그랑빌과 알프레도라는 이제 막 파리에 상경한 시골청년 등 오페라의 중요 인물들이 다 모인다.

손님들이 여주인과 인사를 마친 후 이들은 준비되어 있는 음식과 술을 마신다.

이 때 알프레도가 일어나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이를 비올레타가 받아 부르고 나면 일동이 한데 어울려 합창이 된다.

그러나 이 즐거운 노래를 마칠 때쯤 비올레타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발작적으로 하고 기진맥진한다. 일동은 모두 염려하며 건강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나 비올레타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곧 낳는다고 하며 손님들에게 옆에 있는 방에서 춤을 추라고 권고한다. 혼자 끝까지 남아있던 알프레도는 비올레타를 진심으로 염려하고는 진정이 되자 '추억의 그날부터'라는 노래로 그는 자기가 첫 번째 그녀를 만났던 때를 이야기하며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하며 사랑했는가를 고백한다. 비올레타는 이 고백을 가볍게 넘겨 버릴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감명을 받기도 한다.

이제까지의 그녀의 생애는 오직 환락만을 추구하는 공허한 것이었고 사랑이라는 것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 생전 처음으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듣고 참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비올레타는 마음이 약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기 가슴에서 동백꽃 한 송이를 떼어주며 이 꽃이 시들 때에 찾아오라고 한다.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물러 갔을 때 비올레타는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이 순진한 시골청년이 자기에게 지극히 성실한 태도로 사랑을 고백했던 일과 어느새 자기도 이에 끌린 심경을 노래한다.

'아, 그이었던가'를 부르는데 이 곡에서는 그에게 이처럼 새로운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 사랑의 경이와 즐거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이어서 알프레도가 앞에서 부른 바 있는 'Di quell'amor ..'라는 노래를 되풀이한다.

이 때 갑자기 밖에서 부르는 알프레도의 노래가 비올레타의 감정을 또한번 휘저어 놓는다. 알프레도는 먼저 사랑을 고백할 때 부르던 열정적인 노래를 되풀이 한다. 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듯 멍청히 서있던 비올레타는 이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유창한 아리아를 계속한다. 이 아리아가 끝나며 막이 내린다.

 - 제 2 막 -

제 1 장: 파리 근교에 있는 집 (정원)
1막으로부터 3개월이 경과 하였다.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는 파리 교외에 있는 자그만 예쁜 집에서 행복한 새살림을 하고 있다. 알프레도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타오르는 이 마음'이라는 유명한 아리아이다.

이 때에 비올레타의 하녀 안니나가밖에 나갔다 돌아온다. 어디를 다녀오냐고 묻는 알프레도에게 그녀는 지금까지 이 곳 생활을 하느라고 많은 돈을 썼으며 비올레타의 패물을 팔아서 이제까지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 지극한 사랑에 감복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미안한 마음과 후회의 감정을 표현하며 '오 나의 후회'라는 노래를 이어 부른다.  알프레도는 돈을 마련하러 파리에 다녀오겠다고 나간다.알프레도가 막 떠났을 때 비올레타가 정원으로 나오며 새로 찾이한 행복한 나날의 즐거움을 표현한다. 우체통에 배달된 편지 중에는 파리에 있는 친구 플로라가 연회에 초대하는 초대장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떠들석한 연회 따위는 그녀의 머리에서 이미 떠난 지 오래 되었다.

이 때에 알프레도의 부친 제르몽이 방문한다. 그는 처음에 선량한 자기 아들을 유혹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비올레타를 엄격히 꾸짖는다. 그러나 비올레타의 사랑이 자기가 상상하던 방종한 생활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이라는 것과 이 사랑을 위하여 자기의 마차, 보석, 가구 등 많은 제물을 팔았으며 이런 것들을 조금도 후회않고 있다는 것과 비올레타의 모든 태도나 성격이 양순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번에는 솔직히 자기가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를 이야기 한다.

즉 알프레도의 누이동생이 혼담 중에 있으나 오빠인 알프레도의 방종한 생활이 소문나서 이 결혼이 파혼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프레도와의 관계를 끊어 달라며 '천사와 같은 청순한 딸이'를 부른다. 그의 말에 감동한 비올레타는 이윽고 알프레도를 단념할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이 이별이 알프레도에게 줄 충격을 덜기 위해 일부러 자기가 딴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편지를 쓴다.

이윽고 돌아온 알프레도는 어딘가 서먹한 비올레타의 태도에 의심을 품지만 비올레타는 그의 아버지 제르몽과의 약속을 지켜 괴로움을 억누르며 알프레도에게 자기를 더욱 사랑해 달라고 미친 듯이 되풀이해서 애원하다가 떠난다. 비올레타가 나가 버린 후 알프레도는 플로라의 초대장과 인편으로 전해진 비올레타의 편지를 읽는다. 깜짝 놀란 그가 곧 뒤쫓아 가려고 할 때 마침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만류를 한다. 이 때 제르몽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가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이다. 그는 평안한 남 프랑스의 고향과 즐거운 가정을 이야기하며 아들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아버지의 끈덕진 만류도 뿌리치고 복수를 하러 간다며 뛰쳐 나간다. 그는 플로라의 초대장을 보고 비올레타가 자기를 배신하였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제 2 장: 플로라의 별장 테라스
플로라의 집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집시차림의 여인들에게 장래를 점치고 있고 다른 한쪽 테라스에서는 도박이 시작되었다. 이 '집시의 합창'도 유명하다. 이때 알프레도가 등장하여 이패에 가담한다.

남작 두폴의 팔에 끌리어 들어선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있는 것을 보고 난처해 한다. 그녀는 두폴에게 알프레도와 맞상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알프레도와 두폴은 서로 냉담한 인사를 교환한다. 비올레타를 다시 차지하여 우쭐해진 두폴은 알프레도를 골탕 먹여볼 심사로 카드를 하자고 한다. 그러나 운은 알프레도에게 있어 번번이 두폴이 패하였고 막대한 돈을 잃게 된다. 이 팽팽히 맞선 적의에 가득찬 두 사람의 도박은 저녁식사 대를 알리게 되어서야 겨우 잠시 쉬게 되었다.

비올레타는 이들이 다시 대결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뒤에 남아 있다가 알프레도에게 이 곳을 떠나 달라고 간청한다. 그렇지 않아도 솟아오르는 울화를 간신히 억제하고 있던 알프레도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그러나 자기와 같이 나간다는 조건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비올레타가 이를 거절하자 질투심에 불탄 그는 그러면 두폴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가엾은 비올레타는 궁지에 물려 처참하게 된다. 그가 사랑하는 이는 오직 알프레도이면서도 이 알프레도를 위하여 그는 두폴을 사랑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대답을 한다.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 알프레도는 모든 손님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자기가 오늘 도박에서 딴 돈을 모두 비올레타의 앞에 던져주며 너에게 진 빚은 모두다 이것으로 갚았다 하며 모욕을 준다.

모든 사람들은 알프레도의 이러한 엄청난 처사에 큰 충격을 받고 아연실색할 뿐이다. 누구보다도 크게 놀란 사람은 마침 아들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된 제르몽이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비올레타의 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그는 비올레타가 왜 떠나야 했으며 이처럼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를 그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폴 남작이 드디어 결투 신청의 표시로 장갑을 벗어 알프레도의 발앞에 던진다.(전통적인 결투의 표시)
알프레도가 이를 집어들음으로 이 도전을 수락한다. 이 때에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 다른 심정을 노래한다.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거의 실신상태에 빠진 비올레타, 그녀를 위로하는 여러 친구들, 질투와 분노에 씨근거리는 두폴, 후회와 비탄에 빠진 알프레도, 여기에 제르몽이 부르는 비올레타에 대한 자비와 동정의 노래가 함께 어울린다.

제르몽이 그의 아들을 데리고 나가고 비올레타와 이를 부축한 친구들 등이 뿔뿔이 흩어지며 막이 내린다.

 - 
제 3 막 -

간소한 가구가 딸린 누추한 병실
이제는 아무런 즐거움도 다 잊어 버린 비올레타가 초라한 아파트의 자그마한 침실에 누어 앓고 있다. 한때에는 그가 차지하였던 진귀한 보석들도 지금은 다 없어지고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애석한 일은 비올레타의 병세가 악화 일로에 있으며 이제는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정도인 것이다.

슬픔이 가득찬 전주곡이 울리고 막이 오르면 비올레타가 침대에 잠들어 있고 충실한 하녀 안니나는 남로 곁에 앉아 있다. 잠에서 깨어난 비올레타는 안니나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때는 이른 아침으로 솟아오르는 밝은 햇빛이 이 병실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오지 않고 이제 때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며 비탄에 잠긴 노래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르는데 여기서 그녀는 행복하였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작별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너무도 쇠약한 그녀는 노래 뒤에 관현악의 슬픈 가락이 이어진다.

이 때 안니나가 뛰어 들어오며 알프레도가 왔다고 알린다. 알프레도는 때를 같이 하여 들어서고, 꿈만 같은 이 기적적인 상봉의 기쁨으로 약간 원기를 회복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안기어 이중창을 부른다. 알프레도는 여행 때문에 편지의 도착이 늦었다며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이처럼 다시 만나게된 지금 파리를 떠나 함께 살자고 장래의 계획과 다시 찾은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는 2중창 '파리를 떠나서'를 부른다.

간신히 가운을 갈아입은 그녀는 알프레도와 함께 외출하려 하였으나 기진하여 주저앉고 만다. 이때에 며느리로 맞이하려고 달려온 제르몽과 의사 그랑빌이 도착한다.

마지막으로 비올레타는 자기의 자그마한 초상화를 알프레도에게 주면서 훗날 다른 처녀와 결혼을 하면 이 초상화를 보여주며 '하늘에 있는 천사가 이들의 행복을 빌고 있다'고 말해 달라고  한다.

바이올린의 고음을 타고 1막에서 부르던 사랑의 이중창이 흐른다. 비올레타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다시 한번 일어난다. '아, 이제는 고통도 그쳤어요, 한없는 환희가 솟아나는걸요...' 하며 쓰러져 버린다. 알프레도 등 모든 사람이 슬픔으로 넋을 잃고 멍청히 서있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3. My Review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내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오페라이다.

한국 가곡과 독일 가곡에만 익숙해 있던 내가 오페라라는 장르에 눈뜬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음악 시간에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들으면서부터였다. 당시 파바로티와 서덜랜드의 음성으로 들었는데 그 선율이 너무 좋아서 이런 저런 오페라 아리아 테입을 사 모으다가 본격적인 애호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이다. 그 당시에 세계명작문고 판으로 나온 것을 읽었는데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렴풋이 사랑의 슬픔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던 추억이 있는 소설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춘희>의 완역판을 다시 읽기도 했다. 내가 감명깊게 읽어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소설을 가지고 멋진 선율로 오페라를 만들었으니 내가 매료될 수 밖에.....

또, <라 트라비아타>는 내가 비디오 테잎을 통해서 본 최초의 오페라였다. 고2때 우연히 반 친구에게 안나 모포 주연의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영화를 본 것이다. 거기에서 주연한 안나 모포는 너무도 날씬하고 아름다웠고 연기력이 정말 뛰어났다. 모포는 '아, 그이었던가'를 부를 때 이리 저리 움직이고 무용도 하며 정말 화려하게 불렀다. 그 비디오 테입을 방학 때 빌려 하루에 한 두 번씩 방학 내내 봤던 기억이 있다. 모포의 인상깊은 비올레타 연기 때문에 비디오 오페라 가수라는 스트라타스의 연기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TV를 통해서 방영된 어떤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밋밋하게 서서 '아, 그이었던가'를 부르는 소프라노와 저 아름다운 안나 모포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안 본 사람들은 모를거다.

모포의 노래 실력은 명성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모포의 목소리는 외모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비올레타 역은 무난히 소화해냈다.

모포 주연의 <라 트라비아타> 비디오 테잎은 지구레코드사에서 나온 것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구입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꼭 사고 싶은 테잎이다.

대구 시립 오페라단의 창립 기념 공연이 <라 트라비아타>였는데 나는 표가 있어도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안나 모포의 뛰어난 비올레타의 추억만 간직하고 싶었고 부실한 연기로 실망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모포의 <라 트라비아타> 전곡 녹음은 RCA에서 나오는데 테너 리차드 터커와 호흡을 맞춘 것이다.

테너에 관해서라면 도밍고가 기억에 남는다. 도밍고의 알프레도는 정평이 나 있다. 칼라스가 은퇴한지 몇 년 후인 1970년 경에 EMI에서는 칼라스를 기용하여 <라 트라비아타>전곡 레코딩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당시 칼라스의 상대역으로 EMI에서 찍은 테너는 다름 아닌 신예 테너 도밍고였다. 도밍고와 EMI의 제작진이 칼라스를 방문하였지만 칼라스는 노르마나 루치아 역으로 컴백하고 싶어했기에 성사되지 않았다. 만일 성사되었더라면 우리는 젊은 시절의 도밍고와 은퇴한 칼라스가 녹음한 이색적인 전곡 레코딩을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언젠가 TV에서 80년대 초반에 레바인이 지휘하고 도밍고가 주연한 메트로폴리탄의 <라 트라비아타>공연 실황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당시의 도밍고는 40대 초반이었으니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외모와 연기, 그리고 전성기의 목소리를 맛볼 수 있었다. 바리톤 멕닐의 연기도 훌륭했던 것 같다.

갈색 옷을 입고 2막 시작 아리아 '타오르는 이 마음'를 정열적으로 부르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제르몽 역의 바리톤은 아래 전곡 CD 해설에 언급되어 있지만 바스티아니니가 최고고 아직도 그를 능가할 바리톤은 없다고 생각한다. 1955년 라 스칼라 극장 공연에서 칼라스와의 애절한 이중창을 어찌 능가할 수 있을까? 어떤 바리톤이 그보다 더 중후하고 멋있는 음색으로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부를 수 있을까? 나로서는 한번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이기도 하다. 

1948년 1월 14일, 당시 오페라의 불모지였던 우리 나라에 위대한 선구자들은 이 땅에 최초로 오페라를 공연했던 것이다. 지휘자는이유선이었고 비올레타 역은 저 유명한 김자경 선생이었다.

김자경 선생은 그 후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더 훌륭한 오페라 가수가 되려고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거기서 전설적인 소프라노 릴리 퐁스의 노래를 듣고는 자기는 저런 위대한 성악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대신 귀국에서 위대한 성악가를 양성하고 후원하는데 전력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긴 당시 성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공부하다가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퐁스의 뛰어난 노래를 들었을 땐 충격을 받을 수 밖엔 없었을 것이다.

김자경 선생은 이규도를 비롯한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러냈고 오페라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우리 나라에 김자경 오페라단이라는 사설 오페라단을 세워 이사장을 맡고 활발한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 관한 자료가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아직 찾을 수 없다. 찾는 즉시 더 자세히 올리기로 하겠다.

국내 성악가 중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가장 잘 부르는 성악가는 단연 소프라노 박미혜 교수라고 생각한다.

박미혜는 사실 볼쇼이 오페라단 초청으로(98년 겨울 내지 99년 초로 추정)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한 것이 처음이지만 그 전에 다양한 무대를 통해서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들려 주었다. 변화 무쌍한 표정연기, 따사롭고 깊은 눈빛과 화려한 콜로라투라 기교와 안정된 고음으로 기억에 남을 아리아를 들려 주었다. 특히 유인촌이 진행했던 <토요객석>에서 불렀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라디오 프로에 초대 손님으로 나왔을 때 가장 좋아하는 배역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비올레타와 질다라고 했다. 비올레타는 베르디의 음악이 너무도 아름다워 별로 유명하지 않은 성악가가 좋지 않은 연기를 하며 불러도 아름답게 보이더라는 말씀을 했다. 그만큼 비올레타 역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볼쇼이 오페라단 공연을 준비하면서 성실히 그 역을 연구하고 좋은 소리를 위해 체중을 5Kg  불리기도 한 박미혜는 국내에서 몇 차례 더 공연한다면 국내 최고의 비올레타로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4. 소장 전곡 CD 해설
 

*스테파노(T), 칼라스(S), 바스티아니니(Br) 
  / 줄리니: EMI (1955)


스테파노 칼라스 커플의 1955년 라 스칼라 극장 실황 공연으로 불후의 명연이다. 아들과 헤어져 달라는 바스티아니니와 애원하는 칼라스의 이중창 장면을 보며 당시 스칼라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하니 칼라스의 연기력과 카리스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칼라스의 미모는 비올레타 역에 적격이었을 것이다. 스테파노는 낭랑한 미성으로 열정적인 알프레도를 부르고 바스티아니니는 그 멋있고 중후한 음색으로 최상의 제르몽을 들려준다. 칼라스의 1막 마지막 아리아 '아, 그이었던가'는 내 생각에 크라우스와의 58년 실황 공연에서 더 잘 부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줄리니는 오페라에서 불필요한 장면을 생략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2막을 시작하는 테너의 아리아 "타오르는 이 마음"만 부르고 뒤에 따르는 '오 나의 후회'는 생략되어 있어 스테파노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이 따르나 줄리니의 연주는 집중력이 뛰어나고 훌륭하다. 3명의 성악가가 모두 30대의 전성기였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역사적인 명연을 후세에 남겼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음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베르곤지(T), 서덜랜드(S), 메릴(Br) 
  / 프리차드: DECCA (1963)

메트로포리탄에서 제르몽 역으로 촤고의 인기를 끌었던 메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녹음이다. 메릴은 바스티아니니보다는 온화하고 포용력있어 보이는 제르몽을 들려준다. 하지만 바스티아니니의 매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베르곤지는 세련되고 지적인 알프레도를 들려주고 스테파노 보다는 다소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주 좋은 컨디션에서 녹음된 듯 하다. 목소리의 초점이 잘 맞춰진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파바로티와 녹음한 <라 트라비아타>녹음이 유명해서인지 서덜랜드를 굉장한 비올레타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 서덜랜드는 레코딩을 위주로 했지 실제 무대에선 비올레타를 거의 부르지 않았다 한다. 서덜랜드는 1막 끝 아리아 '아, 그이었던가'의 마지막 고음을 불안하게 부르고 음색이 흔들리며 힘겹게 부른다. 그래서 듣는 사람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다. 서덜랜드의 명성과는 어우리지 않는다. 서덜랜드의 훌륭한 노래를 듣고 싶다면 파바로티와 호흡을 맞춘 보닝 지휘의 DECCA 녹음을 권한다.(보닝 녹음은 발췌 테입으로 들었다.)

*라이몬디(T), 스코토(S), 바스티아니니(Br) 
  / 보토: DG (1963)


줄리니 반에서 멋진 제르몽 연주를 들려 주었던 바스티아니니의 노래를 스테레오의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는 귀한 녹음이다. 스코토가 부르는 '아, 그이었던가'는 훌륭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의 한 소절을 생략하여 부른다. 스코토는 메트에서 비올레타로 인기를 누렸던 명성에 걸맞게 괜찮은 연주와 고음을 들려주지만 칼라스의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라이몬디는 뛰어난 테너지만 미성은 아니다. 스테파노나 베르곤지의 미성을 듣다가 들으면 별 매력을 못 느낀다. 빼어난 바스티아니니의 노래에 기세가 눌리는 느낌이 든다.
후세의 어느 바리톤이 바스티아니니가 중후한 음성으로 부르는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능가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바스티아니니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이상 그만큼 멋진 바리톤 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그의 소리를 높이 평가한다.

*베르곤지(T), 카바예(S), 밀른즈(Br) 
  / 프레트르: RCA (1967)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전곡 녹음인데 나는 단지 베르곤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샀다. 그러면서도 카바예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는데 대실망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를 좀 알고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1막의 비올레타 아리아를 어떻게 부를까 신경을 쓴다. 하지만 카바예는 무슨 이유에선지 고음을 부르지 않고 낮추어 부르며 밋밋하게 끝낸다. 잔뜩 기대를 걸고 듣다가 어깨에 힘이 쭉 빠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유명한 카바예가 왜 이런 짓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곡 녹음에서 카바예에게 속은 만큼 다시는 카바예가 참여한 전곡 녹음은 안 살 생각이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같은 아마추어 팬들에겐 고음을 듣는 즐거움이 크다.
베르곤지는 위에 소개된 프리차드 지휘의 전곡 녹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곤지의 열렬한 팬인 나는 그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이 레코딩을 들을 땐 카바예 노래 빼고 베르곤지의 노래만 듣는다.)

 박태영의 오페라 리뷰: http://beowulf.pe.kr

Source: http://user.chol.com/~opreview/traviat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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