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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
음악과 문학의 조화, 거기에 연기와 연출, 무대미술, 조명, 의상 등의 요소가 골고루 합쳐진 것이 오페라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오페라는 꽤나 고상하고, 때로는 숭고하기까지한 예술형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요란한 액션위주의 헐리우드 영화나 작가정신이 투철한 예술영화나 모두 다 '영화'이듯이, 장대하고 심오한 바그너의 철학적인 음악극이나 시원찮은 줄거리에 통속적인 음악을 갖다붙여 만든 예술적 폐기물들도 예외없이 모두 '오페라'에 속한다. 다만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작품들이 그렇듯,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살아남은 오페라들은 예술성이 아주 뛰어나거나 예술성과 대중성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들이다. 오페라의 매력은 한마디로 여러 예술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는 '총체적 체험'에 있다. 위대한 문학작품 위에 더해진 감동적인 음악이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성악가들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격정적인 몸짓에 의해 공연될 때의 그 감동은 한번 맛보게 되면 도저히 잊어버리지 못한다. 수백만원을 들여 외국의 선진 오페라 무대를 직접 보러가기도 하고, 어렵기만한 이탈리아어, 독일어 대본을 부여잡고 고민도 해보고, 오페라의 원작인 문학작품을 밤세워 탐독하는 비상한 열정을 불태워보는 이유도 모두 다 이 못말리는 매력덩어리인 오페라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긴장할 필요는 없는 법. 음악을 귀에 익히면서 찬찬히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오페라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치고 "라 트라비아타" 모르는 사람 없다지만,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라 트라비아타"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면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프라노로 군림했던 그리스계 미국인 마리아 칼라스는 1950년대 초엽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랬지만 번번히 쓰라린 좌절을 맛보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라 스칼라 극장의 총감독인 안토니오 기링겔리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광신적인 국수주의자 기링겔리에게 있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역을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그리스계 칼라스에게 맡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는 칼라스의 공연을 저지하기 위해 협박과 회유도 서슴치 않았다. 양측의 지리한 공방 끝에 결국 여론몰이로 기링겔리를 압박한 칼라스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지휘로 저 유명한 1955년의 공연을 성공리에 끝마치면서 이 길고 긴 싸움은 기링겔리의 패배로 종지부를 찍게된다. 칼라스가 사라진 후 라 스칼라가 다시 "라 트라비아타"의 성공적인 공연을 갖기 까지는 거의 4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는데, 1960년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당시 30대의 신예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를 비올레타로 전격 캐스팅하여 시도한 "라 트라비아타" 부활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채 카라얀의 캐스팅에 반발한 거물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토의 라 스칼라 극장 고소 사건이라는 불미스런 기억만을 남기고 말았다. 아바도의 뒤를 이어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에 취임한 리카르도 무티는 취임일성으로 베르디 오페라의 전작품을 새롭게 제작하여 공연함과 동시에 특별히 "라 트라비아타"의 부활을 힘주어 강조했는데, 결국 1992년에 젊은 가수들을 대거 기용한 공연이 청중들의 폭풍과 같은 호응 속에 대성공으로 끝남으로써 1955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라 스칼라 극장의 "라 트라비아타"는 40여년만에 극적인 생환의 감격을 누렸고 청중들은 진정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부활을 소려높여 외쳤으니, 이처럼 "라 트라비아타"는 단순히 잘 만들어진 낭만주의 오페라일뿐만 아니라 실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 오페라'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베르디가 이 연극을 보게 된 것은 1852년 2월 파리에서였는데, 당시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채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불안한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베르디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두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아 이를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든든한 파트너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의 대본으로 "동백꽃 여인"에서 "라 트라비아타" (길을 벗어난 여인, 방황하는 여인이란 뜻)로 새롭게 태어난 오페라는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유서깊은 극장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을 갖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요즘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가수의 풍만한 몸매가 폐렴으로 죽어가는 가련한 여인 비올레타 발레리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것이 실패의 첫째 이유였다. 그녀가 육중한 몸매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무대는 자욱한 먼지로 가득했고 울어야 할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하니 어떻게 제대로 된 공연이 가능했겠는가. 또 하나 실패의 원인을 들라면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의상 연출이 꼽힌다. 시대배경이 1840년대였던 까닭에 출연진들 모두가 당대의 의상을 입고 나왔으나 관객들은 이를 낯설어 했다. 자유롭고 분방한 연출정신으로 충만한 요즘 오페라 무대에서야 신사복 정장에 바바리 코트 걸치는 정도는 점잖은 축에 속하고 아예 사이버 룩이니 밀리터리 룩, 스페이스 룩이니해서 파격적인 의상설정이 되려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어쨋든 당시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오페라는 역시 옛날 이야기를 그린 것이란 생각이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명작의 가치는 한 두 번의 실패로 흔들리지 않는 법. 문제된 소프라노를 교체하고, 시대설정을 1700년대로 옮긴 후에는 예의 베르디의 감동적인 음악이 청중들의 가슴깊은 곳을 울려 이 오페라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곧 "라 트라비아타"는 전 유럽을 열광시키게 되었다.
무대위에 하프, 피콜로 2, 클라리넷 4, 호른 2, 트롬본 2, 템버린, 캐스터네츠 무대뒤에 작은 브라스 밴드
먼저 추천음반으로는 오랜 고민 끝에 역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지휘, 마리아 칼라스 주연의 1955년 라 스칼라 실황 (EMI) 음반을 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음반의 최대약점인 음질은 동시대에 녹음된 실황음반들 중에서도 거의 최악이다. 따라서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분들이 마음 놓고 듣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지도 모르나 음질 때문에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놓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줄리니의 지휘봉은 우아함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조용하면서도 짙은 슬픔을 너무나도 잘 형상화시키고 있다. 물론 마리아 칼라스의 열연 또한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1막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콜로라투라 기교, 2막의 짙게 베인 절망과 분노 그리고 좌절감, 3막의 희망없는 슬픔 등은 마치 이 오페라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상대역인 주세페 디 스테파노 또한 달리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알프레도인데, 그의 마력적인 달콤한 음색과 천부적인 표현력은 불같은 정열을 가슴에 품고 사는 시골청년 알프레도란 인물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목소리의 바리톤이 어울리는 제르몽역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가 부른 것은 의외이나 기품이 넘치고 귀족적인 그의 엄격한 해석은 들을 수록 깊은 맛을 낸다. MPEG으로 제공된 토스카니니 지휘의 음반 (NBC 오케스트라/RCA)도 좋은 연주다. 엄격하고 공격적이며 강건한 토스카니니의 해석은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꽉짜인 치밀한 구조감으로 듣는 이를 옴짝달삭 못하게 옳아매는데, 서툴게 감상에 빠지지 않는 점은 옛날 연주지만 꽤나 현대적으로 들린다. 비올레타를 부른 리치아 알바레제는 비브라토 (소리의 떨림과 진동)가 심한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의 가수지만 가볍게 움직이는 목소리의 율동감은 뛰어난 편이다. 알프레도의 쟌 피어스가 들려주는 시원하고 호방한 가창은 이 음반 최고의 매력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으며, 후일 제르몽역으로 유명해진 로버트 메릴의 젊은 시절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1946년 방송용 녹음이지만 음질은 매우 좋은 편이고, 가끔씩 들리는 토스카니니의 흥얼거림도 재미있다. 스테레오 음반들 중에서도 좋은 연주는 많다. 먼저 카를로스 클라이버/일레아나 코트루바스/플라시도 도밍고/셰릴 밀른즈/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DG 음반은 클라이버의 개성적인 지휘가 매력 포인트다. 클라이버는 속도감있는 전개와 깔끔하고 절제된 오케스트라 음색을 바탕으로 통속 멜로물의 요소가 강했던 기존 해석들과는 달리, 차가우면서도 정교한 악상전개로 회색빛 여운이 감도는 비극 오페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트루바스의 비올레타는 칼라스류의 격정적인 감동은 없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목소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사하여 우아하면서도 인간적인 비올레타의 모습을 창조해내었다. 도밍고와 밀른즈의 경우 전체적으로 훌륭하지만 이탈리아 오페라 특유의 깊고 정열적인 큰 울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안토니노 보토/레나타 스코토/지아니 라이몬디/에토레 바스티아니니/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DG 음반은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로 잔뼈가 굵은 보토의 정통한 지휘에 철저하게 벨칸토 창법 (둥글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강조하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창법)을 구사하는 세 주역가수들의 탁월한 기량이 돋보이는 음반이다. 특히 레나타 스코토의 비올레타는 이탈리아 양식의 비올레타를 대표할만큼 성악적인 기교면에선 완벽을 자랑한다. 2 for 1으로 나와있어 가격 메리트도 있다. 그 밖에 로린 마젤/필라 로렝가/쟈코모 아라갈/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음반 (DECCA)과 존 프리처드 지휘, 존 셔덜랜드, 카를로 베르곤치, 로버트 메릴이 열연하는 음반 (DECCA) 또한 2 for 1으로 출반되어 연주와 가격 양쪽에서 매력을 갖고 있다.
특히 2막 중간에 나오는 스페인 투우춤 장면에선 당시 소련의 세계적인 무용수인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와 에카테리나 막시모바 부부가 출연하여 그 화려함이 더하다. 젊은 가수들이 주축이 된 최근의 영상물 두 종도 매력적이다. 라 스칼라 극장의 1992년 "라 트라비아타" 실황 (SONY)은 앞서 언급한대로 칼라스 이후 40여년만에 부활한 "라 트라비아타" 무대를 담은 화제작이다. 리카르도 무티의 활력 넘치는 지휘와 데뷔 직후의 로베르토 알라냐, 혜성같이 나타난 소프라노 타티아나 파브리치니, 젊고 매력적인 바리톤 파올로 코니가 함께하는 젊은 가수진들의 싱싱한 매력이 전편에 넘쳐 흐른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 데뷔 실황을 담은 1994년 영상물 (DECCA)은 신인답지 않게 당당한 연기와 가창을 선보인 게오르규의 모습이 감상포인트다. 지휘는 만년의 게오르그 솔티가 맡아 실내악적인 정묘한 해석을 들려주며, 알프레도역은 프랭크 로파르도가, 제르몽은 레오 누치가 열연한다. 이 두 영상물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다. 글: 황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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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goclassic.co.kr/basic/200005.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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