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있다. 너무나 영리하고 똑똑한 여자가 난봉꾼을 만나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슈만(Schumann)의 부인이었던
클라라가 그랬다. 오늘날 사람들은 슈만과 클라라의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한다. 슈만 탄생 200주년인 올해에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슈만과 클라라의 그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는 죄다 클라라의 자작극이었다. 내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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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학, 독일을
다녀왔다. 업무를 마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라이프치히를 다녀왔다. 슈만과 클라라가 신혼을 보냈던 인젤슈트라세의 슈만하우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을 참 좋아한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 찍혀 있던 젊고 아름다운 클라라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클라라와 슈만의 사랑이 아름다웠던 것은
라이프치히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던 1840년, 오직 그때뿐이었다. 슈만의 위대한 피아노곡들은 대부분 그 기간에 쓰였다. '시인의
사랑'을 비롯한 대부분의 가곡들도 그해 집중적으로 작곡되었다. 이후의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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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슈만이라는 사람 자체가 위대한 사랑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일단 심한 대인관계 불안 때문에 타인과의 사회관계가 원만치
못한 사람이었다. 지속되는 인간관계가 별로 없었다. 클라라와의 결혼도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가 지독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그토록
강렬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다면 클라라와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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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그런 인간이었다. 결혼을 위해 클라라의 아버지와 법정 투쟁을 벌이는 동안, 슈만은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 돈 많은
공작가문의 딸, 에르네슈타인과 사귀어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상속을 받을 수 없는 입양된
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걷어찬다. 오래된 섹스 파트너와도 틈틈이 즐겼다. 그녀로부터 감염된 매독은 죽을 때까지 슈만을
괴롭힌다. 뿐만 아니다. 슈만은 남자들과도 사랑을 했다. 괴테의 손자, 발터 폰 괴테와도 사귀기도 했다. 그와 여행을 다니는
틈틈이 클라라에게 사랑의 편지도 썼다. 평생 열등감과 정신적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술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런 남자와 그
똑똑한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가 결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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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초반부터 알고 지냈던 아저씨 슈만과의 결혼생활에서 클라라가 행복했던 적은 거의 없다. 결혼 후의 현실은 아버지 비크가
저주하며 예언한 그대로였다. 알코올 중독자 슈만은 클라라가 피아노 연습을 하면 작곡에 집중할 수 없다며 짜증을 냈다. 손가락을
다친 후, 작곡가로 돌아선 슈만은 천재 피아니스트인 아내에게 근원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클라라는 슈만과의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태어난 7명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몰두해야만 했다. 간간이 피아노 연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동행한
슈만과 싸웠다. 슈만은 아름답고 뛰어난 아내를 너무 힘들어했다. 결국 우울증에 괴로워하다 강물에 뛰어들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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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클라라는 평생 슈만을 기억하고 산다. 젊은 청년 브람스가 죽자 하고 쫓아 다니는데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후원자로 지낼 뿐이었다. 클라라는 슈만이 죽은 이후 40년을 더 살았다. 너무나 현명하고 아름다웠던 여인, 클라라는 철없던 십대
때의 자신의 선택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정당화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남은 삶을 슈만의 작품과 편지를 정리하며 살았다. 슈만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도록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선택과 삶이 정당화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난봉꾼에게 속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보다, 슈만을 위대한 작곡가로 만드는 편이 똑똑한 클라라에겐 더 쉬운 선택이었다. 일종의 '과잉
정당화(over-justification)'다. 가곡으로는 슈베르트에 밀리고, 피아노곡으로는 쇼팽에 밀리는 슈만이 오늘날 이처럼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는 이유는 순전히 클라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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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똑똑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아주 한심한 현상이다. 아무리 힘들게 올라간 산이라도 잘못
올랐다면 '여기가 아닌가벼'하고 바로 내려올 일이다. 그러나 평생 남들에게 부러움과 칭송을 받아온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생 동안 훌륭한 기업을 일궈온 기업가들이 '한 방에 훅'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 메커니즘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자신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과거의 방법을 고집하다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지난 시대를 성공케
했던 가치들이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시대를 발전케 했던 가치들이 미래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이를 가리켜 전문용어로 '역사의 변증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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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폰', '아이패드'의 애플에
휘둘리는 한국의
IT산업, 통신산업을 보면 자꾸 클라라 생각이 난다. 잠시, 아주 잠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다가 난데없는 스티브 잡스 같은
난봉꾼에 말려, 평생 그 뒷바라지나 해야 할, 정말 어이없는 형국인 것 같아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바다' 같은
난데없는 프로그램이나 만들어 스마트폰 시장에 덤벼들 일은 아닌 것 같아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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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는 그렇게 슈만의 그늘에 묻혀 살다 갔다. 그녀의 슬픈 운명을 멀리서 바라보며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거참, 난봉꾼
슈만은 참 여럿 슬프게 했다. 요즘 난봉꾼 스티브 잡스도 참 여럿 어렵게 한다. |
Source: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16/20100416016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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