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찌니(푸치니, Puccini)는 본래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작곡가이며 본질적으로는 낭만으로 가득 찬, 달콤한
음악을 특징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이 [토스카]는 그 내용이 좀 다르다. 오페라의 중심인물 3인이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거나 높은 성벽 위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음악의 경향, 즉 상상의 세계나
동경(憧憬)의 세계를 무대 위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신변(身邊)에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에서
소재(素材)를 얻어 그것을 그대로 무대 위에 재현(再現)하려는 베리즈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베리즈모 오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러나 자기 음악의 어법(語法)을 잘 알고 극 음악가로서 확실한
감각을 지닌 푸찌니는 그것을 영향의 단계에 그대로 멈추어 둔 채 결코 그것에 떠밀려 나가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자기
내부에 깃들어 있는 극성(劇性)을 끌어낸다는 입장을 굳게 지키면서 [토스카]를 작곡했다. 따라서 이 오페라는
‘극성‘이라는 면에서 그의 다른 오페라에서는 다르지만, 진짜 그의 음악극이며 자칫 낭만 과다에 빠지기 쉬운 그의
결점이 고쳐진, 진실성이 있고 생명감 넘치는 작품으로서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평론가도 적지 않다.
남자를 울리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만큼 남자가 울고 남자를 울리는 아름다운 아리아는 없다. 젊은 화가 카바라도씨는 자유의 투사이며
정치범인 친구가 탈옥하여 찾아온 것을 숨겨준 죄로 처형당하게 되었다. 동 트는 새벽녘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기의 생각을 적으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어야 하는 기막힌 처지를 생각을 하니 울음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말이 솟구쳐 나온다. 로마의 산타 안젤로 성의 옥상이다. 이 아리아의 제목은 ‘별은 빛나고’가 번역상
옳으나, ‘별은 빛나건만’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곡의 내용과도 어울리는 느낌이 있어 그렇게 하였다.
E lucevan le stelle
E lucevan le stele ed olezzava la terra,
stridea l'uscio dell'orto,
e un passo sfiorava la rena.
Entravaella, gragrante,
mi cadea fra le braccia.
oh! dolci baci, o languide carezze,
mentr'io fremente
le belle forme disciogliea dai veli!
Svani per sempre il sogno mio d'amore,
L'ora e figgita,
e muoio disperato. (repeat)
e non ho amato mai tanto la vita,
‘별은 빛나건만’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채소밭의 문이 삐걱거리며
모래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그녀가 들어와
내 품속에 몸을 맡겼다.
오! 달콤한 입맞춤, 수 없는 나른한 애무(愛撫),
나는 떨면서
베일을 벗기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틈도 아쉬워하며....
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졌다.
시간은 흘러갔다.
절망 속에 나는 죽는다. (반복)
이제 와서 이토록 아쉬운 것일까 목숨이란!
뼈아픈 비탄이 가슴을 저민다
이 아리아의 선율은 제3막이 올랐을 때부터 몇 번인가 오케스트라로 되풀이 연주되며 분위기를 돋구다가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이 부른다. 제1행의 “그리고 별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라는 노래는
이미 머지않아 죽으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즉 제11행의 “절망 속에 나는 죽는다”(e muoio
disperato)의 전제인 셈이다. 그리고 이 아리아의 주요 내용은 제2행부터 제8행 사이에 이루어진다. 채소밭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과의 밀회(密會)가 추억 속에 떠오른다. 로마 시부터 동떨어진 카바라도씨의 별장이다.
토스카와의 사랑을 불태우고 또 친구인 정치범을 숨겼다가 가혹한 운명에 빠진 그 특별한 장면이다. 오페라 [토스카]는
매우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드라마의 전개에서 보자면 “은밀한 조화”를 부르는 제1막과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를 노래하는 제2막 사이에 ‘카바라도씨의 별장 장면’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 장면을 생략하고 제3막의
아리아 “별은 빛나고”에 아주 응축(凝縮)된 추억 형식으로 포함되어 보다 강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마지막 줄의
뼈아픈 비탄(悲嘆)은 가슴을 저민다.
[토스카]에 얽힌 에피소드
1961년에 샌후란시스코(샌프란시스코) 가극장에서 있은 일이다. 프로듀서는 그 해 시즌이 끝나는 마지막 공연을
출연진인 간단하되 효과 있는 오페라로 무난히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작품이 [토스카]였다. [토스카]에는
중요한 등장인물은 3명밖에 없다. 그 밖의 출연자는 제1막의 합창단, 제2막의 성가대, 제3막의 사형집행대 뿐이다.
합창대는 리허설이 필요하겠지만, 성가대는 무대 뒤에서 노래할 뿐이고 사형집행대는 노래하지 않는 역할이므로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그 생각에는 뜻밖의 함정이 있었다. 제작진은 사형집행대를 그 고장 대학의 학생을 골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오페라의 내용을 전혀 모르며 원기 왕성하여 바쁜 연출자에게 계속 묻는다. “우리
언제 나갑니까?" "무대에선 무엇을 합니까?”하고 물어도 정신 없이 바쁜 프로듀서는 “나중에, 나중에”하는
대답뿐이었다. 공연 날이 다가왔다.
[토스카]의 마지막 부분의 처형 장면 <출처: Rous,
Samuel H. (1921)>
갑자기 환자가 생기고 하여 의상(衣裳)을 입고하는 마지막 총연습도 생략했다. 비로소 처음 5분 가량 틈을 낸
프로듀서가 그래도 할 지시는 제대로 내렸다. “자, 제군들, 무대 매니져가 신호를 보내면 천천히 행군해서 무대에
나가게. 그대로 대형을 유지하고 있다가 장교가 칼을 아래로 내릴 때까지 기다리게. 그러다 내리면 일제히 사격을
하게.” “그런 뒤에 언제 무대에서 퇴장합니까?” “퇴장? 퇴장은 주역이 할 때 같이 하면 되네.”
결국 그날 청중이 본 무대는 다음과 같다. 사병 한 분대가 행군해 나왔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좀
쫓기는 듯한 남자와 여자였다. 병사들은 그들이 쏘아야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좀 어리둥절하여
처음에는 남자에게 총을 겨누었으나 남자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에게 야릇한 시선을
보냈다. 군인들은 재빨리 여자에게 총부리를 돌렸다.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몸짓으로 자기가 아니라는 몸짓을 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몸짓이라고 짐작하고 또 이 오페라의 이름이 [토스카]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알고 있었다. 저
앞에 서있는 뚱뚱한 여자가 토스카임이 분명하다. 근엄한 장송(葬送)음악이 흐르며 장교가 칼을 내리려하고 있다.
드디어 사건은 일어났다. 군인들은 이치에 맞게 카바라도씨가 아니라 토스카를 사살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20야드 정도 떨어져 있던 남자가 쓰러졌다. 사살한 여자는 죽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남자에게 달려갔다. “자
일어나요, 빨리 출발해야지”하고 울며 외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어쨌든 주역을 쏘았다.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쏜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다음 지시는 ‘주역과 함께 퇴장해야 된다’이다. 군인들은 좀 당황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스카르피아의 부하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자 토스카는 성벽 꼭대기에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어내렸다. 막이 천천히 내리는 속을 연출자의 지시를 충실히 지켜 사형집행대 전원도
차례로 뛰어 내렸다.
- 글 안동림
/ 전 교수,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의 저자
-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이며,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자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다. 저서로는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장자], [벽암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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