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과 금융의 결합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디지털 자산은 금융의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 기승전비트코인은 기술, 금융, 투자, 정책 등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입체적으로 스캐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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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5만달러를 돌파했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시장이 월가의 주요 투자 은행, 기업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주식, 부동산, 원자재, 금(골드) 등 코로나 이후 오르지 않는 자산이 사실 없다. 비트코인이 유달리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세계가 펑펑 돈을 뿌리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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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비트코인에 15억 달러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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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자율 주행 전기 자동차 업체 테슬라다. 평소에도 일론 머스크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 지난해 12월 20일 트위터를 통해 “대량의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올렸다. 이 트윗에 답한 것이 미국 상장사로는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매수한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CEO다. 세일러는 “테슬라가 보유한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바꾸면 주주들에게 1,000억 달러 이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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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머스크는 테슬라의 여유 자금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회계 자료에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샀다고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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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시장 참여 소식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이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 14일을 기준으로 암호화폐 시가 총액은 1조5,300억 달러(약 1,686조원)로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시총 1조4,100억 달러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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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투자해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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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에 올라 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아주 진지한 분석 자료를 낸 헤지펀드 운용사가 있다. 레이 달리오가 이끌고 있는 브리지워터다. 1975년 설립된 회사는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5위에 드는 명성과 수익률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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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대표 레이 달리오의 입장 변화는 월가의 비트코인에 대한 태도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2020년 1월 현금(Cash)은 쓰레기(Trash)라고 했다. 금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당시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크고 가치 저장수단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입장을 변경했다. 지난 1월 28일 그는 회사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25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분석 보고서를 올린다. 보고서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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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새로운 부(wealth)의 저장소를 찾아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시킨 통화 팽창이 언젠가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경제를 압박할 때, 금과 유사하게 가치를 저장할 무엇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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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비트코인 시장 규모가 ‘현재로선’ 대형 기관투자자에게는 너무 작다. 규모가 작다보니 가격 변동성도 크다. 브리지워터가 운용하는 자금은 1,200억 달러다. 비트코인에 1%만 투자해도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라는 거금이 디지털자산 시장에 투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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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비트코인을 둘러싼 여러 위험 요소 중 가장 큰 것은 정책 규제다. 역설적으로 비트코인이 성공할수록 규제 당국의 견제가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비트코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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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는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한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리스크는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트코인을 장기 옵션으로 생각한다. 80%를 잃더라도 괜찮은 정도의 자금을 투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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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대항하는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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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책 리스크를 걱정하는 이유를 핵심만 요약하면 이렇다. 각국 정부는 디지털 자산,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전통적인 화폐를 잠식할 것을 우려한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연구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가 민간 차원의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과 경쟁하는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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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규정하면 어떻게 될까. 테슬라가 투자한 15억 달러는 컴퓨터 디스크상에서 파일이 삭제되듯이 영구히 폐기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한 블록체인 기술,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자산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 혼자서 불법화하더라도 글로벌 네트워크가 살아 있는 한 비트코인을 죽일 수는 없다. 물론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할 수는 있다. 레이 달리오가 80% 손실을 감수할 정도로만 투자하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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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새로운 자동차 산업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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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의 속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기 전에, 풍운아 일론 머스크의 비트코인 투자 결정을 먼저 분석해보자. 지난해 말 기준 테슬라는 193억 8,000만달러의 현금을 보유 중이다. 이 중 15억 달러를 비트코인 투자에 썼다. 7.7% 수준이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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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공식적인 이유는 이렇다. “남아도는 현금을 더 유연하고, 더 다양한 방법으로 운영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겠다. 대체 자산으로 디지털 자산, 금, 금ETF 등에 투자하고자 한다. 그 첫 시도로 비트코인을 15억 달러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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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법률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테슬라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하겠다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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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아무 생각 없이 비트코인에 거금을 들인 것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디지털 자산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은 상하좌우로 수백, 수천 개의 기업들이 얽혀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 비즈니스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개 부품을 제공하는 협력업체가 필요하다. 판매는 전국적·국제적 딜러 협력사를 통해야 한다. 특히 판매망은 본사 의지만으로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GM은 직접 자동차를 팔지 않는다. 수십 년 넘게 거래 관계를 맺은 판매 전담 협력사가 차를 판다. 테슬라는 다르다. 쇼핑몰에서 구두를 사듯이, 모바일로 전자제품을 사듯이 자동차를 직판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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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본사 차원에서 자동차 판매 대금으로 비트코인을 받고 싶어도 딜러 협력사를 설득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테슬라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을 결제 통화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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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와 페이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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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의 모바일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이 전격적으로 암호화폐를 취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팔은 올해 1분기 중에 전 세계 2,900만개 가맹점에서 암호화폐를 이용해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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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 창업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머스크는 25세에 첫 창업을 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다른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바로 페이팔이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매각된다. 31세 머스크는 이때 1억달러 이상을 손에 쥐게 되는데, 이 돈으로 테슬라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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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질문으로 돌아가자.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비트코인은 투자할 만한 자산인가. 레이 달리오의 생각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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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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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는 지난 1월 30일 워싱턴포스트와 영상으로 신년 인터뷰를 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는 상황에서 금융 투자계 거물의 전망이 궁금했을 것이다. 레이 달리오는 미국이 달러를 이렇게 많이 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한다. 세계사적인 화폐 권력의 변화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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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미 세계 1위의 교역국이다. 그런데 무역 대금의 단 2%만이 위안화로 결제된다. 중국이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둘까.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권력의 축이 이동하면서 파운드는 세계 통화가 됐다. 영국에 이어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됐고, 달러가 기축통화로 부상했다. 그 다음은? 레이 달리오는 역사를 되짚어보며 달러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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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레이 달리오가 비트코인을 옵션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자. “비트코인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저장소를 찾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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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시 미국 젊은 개미 투자자의 집단 행동이 월가를 떠들썩하게 할 때였다. 이들은 대형 기관투자자의 게임스톱 공매도에 격렬하게 대항했다. 레이 달리오는 관련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다. “나도 그 나이에 투자를 시작했어요. 나도 반항적이었고, 뭔가 내 방식으로 투자를 해보고, 시장을 깨뜨리고 싶었죠.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반적인 분노, 미움, 서로를 해치려는 욕망입니다. 시스템이 위험에 빠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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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중심의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다면 비트코인이 그 대안 중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 우리들도 80% 잃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만 투자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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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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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블록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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