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스러웠던 봄추위에 차나무 새싹이 상처를 입어 우전에서 세작에 이르기까지 올해의 첫물차가 염려된다. 흰색 찻잔에 잘 어울리는 연록색의 은은한 빛깔에 그 어떤 것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조 높은 향과 잘 어우러진 맛을 내는 햇차를 우려 마시는 즐거움 때문에 평범한 다인(茶人)이라도 4월이 되면 기다림에 가슴이 설레리라 생각된다.
옛날에는 왕후장상이나 누렸을 법한 식생활 양식인데 오늘날에는 일반 서민까지도 추구하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경험에 의한 식재료에 대한 평가에서 이래서 좋다는 과학적 임상 데이터로까지 입증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그 결과 식생활의 과학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와 함께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풍요로워진 현대에는 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개인의 기호와 기능성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희고 작은 예쁜 꽃을 피우는 차나무는 동백과의 식물로서, 이 차나무의 어린 잎으로부터 발효 정도에 따라 맛, 향기, 색깔이 다른 녹차(綠茶), 홍차(紅茶), 우롱차(烏龍茶) 등이 만들어진다.
녹차는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차이고, 홍차는 완전 발효시킨 차이며, 우롱차는 부분적으로 발효시킨 차다. 우롱차와 홍차 발효의 특이한 점은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고 찻잎에 들어 있는 효소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녹차, 홍차 및 우롱차를 만드는 차나무의 품종은 다르지만 같은 차나무과의 어린 잎에서 만들어지므로 차의 성분에 있어서도 동일한 성분이 많다. 그러나 품종의 차이와 발효라는 제조공정의 차이에서 오는 성분의 차이가 있어, 향미(香味)뿐 아니라 효능 면에서 다소의 차이를 가져온다. 중국의 차 연구가로 유명한 첸 종마오 박사는 매일 한 잔 또는 그 이상의 차를 마시면 약국에 가는 것을 멀리 할 수 있고 차(茶)란 글자를 풀이하면 20+88로 108세까지 산다는 뜻이 된다고 강조했다.
차가 세계인의 기호음료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그 맛과 향기가 인간의 기호에 맞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차의 성분이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과학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차의 풍미가 뛰어나고 색이 아름다우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은 차에 그런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녹차의 경험적인 효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옛 문헌에 너무나 많이 회자되어 왔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강 기능성에 대한 것은 주로 차의 폴리페놀 성분인 카테킨에 기인한다. 즉 항암, 항산화, 라디칼 및 활성산소 제거,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고혈압과 혈당 강하, 항바이러스 및 해독, 치석 합성효소 저해, 구취 및 악취 제거, 체지방 축적 억제 및 알츠하이머형 치매 억제 등은 이미 동물 실험 등에 의해 밝혀진 것들이다. 카테킨 이외 성분의 효능도 다양하다. 카페인(각성 작용, 이뇨 작용), 비타민 C, 비타민 B₂, 비타민 E (항산화작용, 스트레스 감소, 노화방지), 카로틴(항산화작용, 항암작용), 감마-아미노뷰티릭산(혈압강하), 플라보노이드(혈관벽 강화, 항산화작용), 플루오르(충치예방) 및 다당류(혈당 저하) 등이 있다.
긴장 완화시켜 잠 잘오게 해
최근에는 식품 중에서 차에만 있는 성분으로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의 생리작용에 관해 이미 알려진 카페인의 체내 흡수저해 효과 이외의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테아닌은 차 특유의 감칠맛과 단맛을 가지는 것으로 햇볕을 차단하여 일조량을 감소시킴으로써 찻잎에 많이 축적된다.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을 통하여 이를 증명하는데 테아닌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생리작용이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집중력 향상 같은 기능성을 이용하여 테아닌을 넣은 골프음료가 시판되고 일본에서는 집중력 및 수면의 질을 높이는 목적 등으로 찻잎에서 추출한 정제 테아닌이 판매되고 있다. 실제로 긴장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 정제 테아닌을 먹어본 결과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과학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문화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차는 바야흐로 마시는 차에서 먹는 차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차 찌꺼기로 버려지는 65%의 불용성 성분(식이섬유, 지용성 비타민, 엽록소 등)을 섭취할 수 있도록 각종 요리에 적극 이용하자는 것이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녹차를 대신하는 대용차류가 많다. 차나무가 도입되기 전부터 오미자차, 난액차, 구기자차, 화향차, 제호차, 귤차, 보리 및 콩 등을 볶아서 달여 만든 차를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서 근대에 이르러 차 문화가 쇠퇴한 여러가지 원인 중에 다양한 대용차의 이용도 한몫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이때의 대용차란 각종 한약재료, 과일, 곡류 등을 말리거나 가루로 하거나 얇게 저며 설탕에 재우거나 해서 끓는 물에 타거나 직접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을 말한다.
한편 탕이란 꽃 말린 것을 물에 우려 마시거나 과일이나 한약재를 꿀과 함께 졸여서 고(膏)를 만들어 저장했다가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라고 정의되고 있지만, 단순하게 차란 기호성이 있거나 몸에 좋은 재료를 뜨거운 물에 우린 것이고, 탕은 건강 지향적인 생약재료를 몇 가지 섞어 끓여서 달인 액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쌍화차나 제호차처럼 차와 탕이 엄밀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허브차도 대용차로 각광받아
허브차도 차나무의 찻잎을 사용하지 않는 대용차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전통적으로 마셔왔고 안젤리카(angelica)는 당귀, 민트(mint)는 박하, 코리안더(coriander)는 고수, 딜(dill)은 회향, 타임(thyme)은 백리향에 해당되는 등 동서양에서 공통되는 허브류도 많다. 허브(herb)란 허바(Herba ; 초록색 풀)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며 품종은 수없이 많다. 현대에서는 잎, 꽃, 열매, 뿌리 및 줄기 등이 건강이나 미용을 위해 의약품이나 화장품 혹은 식용을 위해 식품재료와 각종 향료에 이용 될 수 있는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초본 식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입수할 수 있는 허브차를 중심으로 그 종류와 효능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잎을 이용한 허브차로는 레몬그래스, 레몬버베나, 로즈마리, 세이지, 타임, 페퍼민트 및 라임블라섬 등이 있다. 레몬그래스와 레몬버베나는 문지르면 레몬향이 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꽃을 이용한 허브차로는 라벤더, 마리골드, 오렌지꽃, 저먼 캐모마일, 재스민 및 히비스커스 등이 있다. 열매를 이용한 허브차로는 로즈힙, 스위트펜넬, 캐러웨이 및 코리안더 등이 있고 뿌리를 이용한 허브차로는 안젤리카(서양당귀)가 있다.
허브의 유효성분을 간편하면서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허브차를 마시는 것이다. 마시는 방법은 복용 효과와 흡입 효과를 두루 취할 수 있다. 복용 효과로는 허브의 공통적인 효능과 허브 고유의 약리효과가 있다. 공통적인 효능은 노화방지와 관계되는 항산화작용과 각종 성인병에 효과적인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다.
허브를 차로 마시면 허브 중의 미량성분인 향기(정유) 성분이 코로 흡입되어 온화한 향기요법 효과가 얻어진다. 현대인에 많은 스트레스성 위궤양에 좋은 저먼 캐모마일을 보자면 저먼 캐모마일의 유효성분인 아즐렌이 위궤양 부위에 직접 작용하고 진정작용이 있는 정유 성분을 향으로 흡입하는 것에 의해 진정효과를 얻을 수 있다. 카페인이 거의 없고 설탕을 넣지 않는 장점도 있다.
/주간조선 1849호 게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