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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변에 자리잡은 옥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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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평양냉면에 이야를 써보려 했지만 다 못 가본 냉면집들이 있어 미뤄왔는데, 그러는 사이 삼복도 성큼 절반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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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서 지금이라도, 비록 못가 본 냉집들이 있는 하지만, 한번 올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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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명한 평양냉면은 대체로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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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 검색해보면 대충 필동면옥, 을의 을지면옥, 우래옥, 장충동의 평, 을밀대, 강남의 봉피, 다동의 남포면옥, 신촌의 고박사집 등이 검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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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유명 집은 다 포된 것 . 정말 유명한 집인데 내가 못가본
집 있다면 추천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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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거한 냉면집들은 , 이 남포면은 빼고 싶다. 과거에는
어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 파마약 냄새가 난. 파는 평양봉지 잘 씻지 않으면 난다. 그
이상 설 하지 않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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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냉의 점은 평양의 유 집인 류관에 두다. 대학 때
같은 학급 사람의 자친구가 옥류관에 관은 참 많이 서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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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에 갈 다 오늘은 꼭 3그릇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고 가지만 내
기록은 2그릇 반이었다. 참고로 대학 때는 배고픈 때가 많았기 때문에 그때 울에 가져다 도 3그은 먹었을 것 같. 그만큼
옥관 냉면은 양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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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옥류관이 남쪽의 입맛을 고려할 때도 기준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 옥류관에 갔던 사람들은 맛이 슴슴하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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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러니깐 1990년대에 남쪽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평양에 가서
옥류관에 가서 국수를 먹었더니 안내하는 북한 사람이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는지 아이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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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생각 없이 “서울이랑 맛이 틀려요”하고 대답했다. 서울에선
“틀려요”가 “달라요”와 같은 의미이지만 북한에선 부정적 의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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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안내원이 “남조선에선 아이들에게까지 부정적으로 대답하게 정신교육
시키고 왔다”고 문제 삼더란다. 한나절 이 문제로 시끄러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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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건 여이고 어쨌든 옥류관이 천하에 절 냉면 맛 기
되는 은 아니다. 또 옥류관의 주요특징은 쟁반냉면인데 서울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않은 것도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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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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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옥류관이 냉면의 본고장 평양에 있는 냉면이고 또 내가 평양에서
살다 왔으니 남쪽에서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냉면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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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와서 냉면을 먹어 봐도 내 입맛에는 옥류관을 따라올 냉면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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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 나 아리 느슨한 기준을 들이대도 미식가는 아닌 것 같다.
냉면의 맛에 대해 유려한 설명과 비유를 들 자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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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냥 내가 먹어본 소감에 대해 적으려 한다. 다른 사람과는 의견이
충분히 다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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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먹어 본 중 한국에서 냉면맛이 좋았던 냉면집은 서울이 아닌
부산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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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원산면옥’이다. 자갈치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그곳
냉면이 먹고 싶어 부산에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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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도 1세가 돌아가 2세 물려받은 뒤로 맛이 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무튼 서울에도 1세가 하는 냉면집은 거의 없으니 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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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나는 을지면옥과 옥으로 꼽는다. 을지면옥은 육수가
좋고 우래옥은 면발이 좋. 의 장점을 좋겠다는 생이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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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면옥도 유명한데 을지면옥과 자매가 운영하기 때문에 맛이 비슷하면서도
나름 다르다. 필동냉면이 언니, 을지면옥이 동생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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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면옥, 을지면옥, 우래옥은 옥류관보다는 김일성대 앞에 있던
룡흥식당(? 오래돼서 기억력도 가물가물...) 국수맛과 더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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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다닐 때는 김일성대 주변에 식당이 손으로 꼽아봐야 너댓개
정도밖에 없었다. 이중에서도 손님의 90% 이상이 김일성대 학생들인 지하철 삼흥역 앞 룡흥식당은 김대 졸업생들이라면 누구나가
각별한 추억을 갖고 있을 국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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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집도 고난의 행군 이후로 맛이 갔지만 그 이전에는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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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면옥은 모든 평양냉면집들 중에서 맛이 가장 슴슴하다. 내 입맛에도
너무 슴슴해서 을지면옥과 우래옥보다는 약간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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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기자 중에 한명이 평양냉면 팬이 있는데, 그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른다. 그의 할머니가 평양에서 오셨는데 할머니를 따 어렸을 때부터 평냉면집을 다니면서 맛 들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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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울에서 가장 먼저 먹어본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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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은 2순위에 들 수 있지만 을지면옥이나 필동면옥, 우래옥보다는
약간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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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순위로 평양냉면과 봉피양을 꼽는다. 이 두 국수집은 평양냉면계의
탈레반이라고 할 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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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호불호가 뚜렷이 갈릴 수 있지만 제 입맛에는 2순위보단 못한 것
같다. 왜 런가 하니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을 안 뒤엔 두 냉면집을 가게 되지 않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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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나 마의 을밀대 이 가봤. 을밀대 굵은 메밀면발이
독특하다. 물 을밀대의 면발 굵기는 북한식에 가장 가깝고 지만 질 정도는 한과 다다. 더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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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피양도 서너 번 갔었는데 특징은 육수가 매우 진했다. 평양냉면과
대척점이 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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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고박사집은 가긴 했는, 맛이 뚜렷이 기억 남지 않아 순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느껴지는 맛이 없이 평가한다는 것은 무성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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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본 중에는 우래옥 제일 좋 것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신
좀 비싸다. 봉피양도 최근에 가격이 많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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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밑에서부터 으면 원산면옥이 6000원, 모란각이 6500원,
을밀, 을지면옥, 필동옥 8000원, 우래옥 1만원, 피 1만1000원이다. 이 저렇게 비싼 것은 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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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피양 1그릇이면 면옥이나 모란각 냉면 거의 2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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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오니 면을 위로 잘라 먹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물론 남한
면들이 반적으로 북에 해 매우 가늘고 질긴 탓도 있겠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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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래 면 잘라먹는 것이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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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잔칫집이나 환갑(요는 남쪽에서 잘 쇠지 않지만
북에 매우 큰 예식이다)을 치르는 집에 면 수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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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면발처럼 길게 오래 라는 뜻이다. 그런데 명을 의미하는 면을 가위로
뚝뚝 잘라버리면 단명하라는 뜻이 돼버릴 수 있으니 옛 조상들이 와보면 펄쩍 뛸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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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로 자르지 않으면 처음에 휘젓는 것이 좀 힘들 수는 있지만 면을
후룩후룩 들이 잘라먹는 은 습관 되면 괜찮다. 사람에 따라서 이로 면을 잘라내는 과정에 국수의 또 다른 진짜 맛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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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들었던 유명 냉면집 중에 딱 한군데 못 가본 것이 아쉬운데,
그곳은 대전 유성 숯골원냉면이다. 언제부터 가본다고 하면서도 못 . 대전에 가면 꼭 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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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쉽냐하니 다름 아닌 부산의 원산옥을 추천해주신 분이 자기 장
좋아하는 냉면집으로 원산옥과 숯골원냉면을 꼽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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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냉면집은 별로 명성을 못 들었기 때문에 못가서 아쉬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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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의 유명 냉면집을 검색하면 잘 나오진 않지만 ‘모란각’의
냉면도 상당히 맛이 괜찮다. 옥류관의 맛과 흡사하게 하느라 많이 노력한 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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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각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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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각은 장사가 잘 돼 지 현재 일산에 유게 본점이 남았는데
네비에 치면 안내해준다. 그렇게 없어지기엔 너무 아까운 맛이라고 생각해 한번 가보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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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각의 주인이 귀순자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서 추천하는 것
하늘에 맹세컨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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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각에선 내가 누군 모른다. 그냥 평범한 손님들 마찬가지로 나
그냥 주문 돈을 고 나온다. 하 평균 두 달에 한번은 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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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냉면은 굳이 순 포시키면 2순위 정도는 든다고 본다.
한번은 평양 출신 사람 몇 명을 데리고 갔더니 맛이 괜찮다고 모두 리를 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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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냉면맛을 평가할 때 무엇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입맛이
어느 냉면집에 길들여 있는가가 아닐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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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처럼 어려서부터 평양냉면을 즐겨 찾았다면 제 아무리 평양의 옥류관
본점에 갖다 놔도 평양냉면이 제일 맛있을 것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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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에 옥류관이라는 국수집이 없다. 예전에 어느 탈북자가
‘옥류관’이라는 브랜드의 식당을 강남쪽에 냈지만, 브랜드를 놓고 법정공방까지 가면서 시끄워고, 여기에 북한까지 가세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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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북한 옥류관이 서울에 진출할 뻔 했던 일도 있다. 2000년
6.15정회이 있고 그해 10월 북측 대표단이 울 류 분점 개설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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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은 건물의 설계에서부터 조리사 파견, 재료운반 방안 등
세부사항까지 제시하면서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훗날 어찌된 영문인지 진척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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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붕괴되면 서울에 옥류관의 브랜드를 빌린 식당이
많아지리라는 점이다. 그때면 남한의 자본이 평양 옥류관의 우수한 요리사들을 평양에 가만히 앉혀두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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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왠지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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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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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ournalog/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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