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 '타조의 제왕'

글로벌 인생 [2] 뉴질랜드 배효섭씨
97년 이 웰빙음식에 승부수
뉴질랜드 타조 고기 99% 고급 가죽 등 광상품화 고기 수입보다 많아
“타조(駝鳥) 주세요!
뉴질랜드 사람들 수마켓이나 식당에서 타조 고기를 주문할 때 ‘오스트리치(ostrich·타조)’라는 영어 대신 ‘타조(Tajo)’ 한국말을 쓴다. 순전히 배효섭(48) 덕분이다. 그는 뉴질랜드에 소비되는 조고기의 99%를 공급하는 ‘타조 왕’이다.
뉴질랜드 북섬 유레웨라 국공원 부. 광활한 숲이 병풍처럼 원을 둘러싸고 있는 에 의 타조장 30만 . 한가롭게 풀을 뜯던 타조들은 관광이 탄 코끼 열차가 가면 울타리 쪽으로 몰려나와 모이를 받아 먹는다. 뉴질랜드 전역에서 수천명이 해마다 배씨의 타조농장을 찾는다.
한국에서 채권펀드 매니저로 활약했던 배씨가 뉴질랜드로 이민 것 위기 직전인 1997년. “1990년대 중반 한국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해외투자를 하더군요. 머지않아 위기 올 거라는 생이 들었죠. 그때 남은 인생은 외국에서 승부를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민 8년 만 뉴질랜드 타조 사육업계를 석권한 배효섭씨 가족. 큰아들 명선(21·진 왼쪽)는 오클랜드대학 졸업 후 건축회사에 근무 이고 막내 훈(19맨 오른쪽)군 오랜드대 경영학과에 학 중이. 인 정순옥(47)씨는 가에 전념한다. /효섭씨 제
고감도 센와 같은 감각이었다. IMF환란이 올 줄 미리 감지하고 뉴질랜드로 떠났다는 것이. 미국이나 캐나다를 놔두고 뉴질랜드를 찍은 이유는 자연환 좋고 경쟁이 다는 것, 즉 블루오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꿈 그대로 적중했다. 이민가방을 뒤 8년 만에 뉴질랜드 타조사육업계의 대부(현재 랜드 타협장)가 됐다. 왜 하필 타조였을까.
전 재산을 처분해 뉴질랜드 날아간 배씨 산업 분야에서 반시 성공겠 일로 목축, 관광 분 박람회장을 쫓아다녔. 그 중 ‘타조 람회’가 있었다. 아이디어 솟구쳤. 광우병, 구제역으로 소고기, 기 주춤하면 웰빙음식인 고기 히트를 칠 것 확신이 섰다. 타 소고기와 맛이 비 지방성분은 없, 먹는 사량에 비해 배설물 적어 성 보다.
우선 뉴질랜드의 대시 클랜드에서 20 떨어 곳에 15000평 규모의 농장을 3억 샀다. 혈통이 좋 타조를 번식시키는 일종의 ‘씨 농장’이다.
여기서 운 를 유레웨라국립공원 인근 농장(갈라티아 타조농장)으로 옮겨 대량 사육해 고기를 생산한다.
자금은 현지 은행 부동산담보 대출로 조달했다.
처음엔 판로개척이 힘들었다. “뉴질랜드 국포츠인 럭비 경기장에 찾아가 ‘타조고기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햄버거 형태로 만든 ‘타조 버거’를 공짜로 나눠주고, 초등 급식으로도 제공했.”
초기엔 주문이 없어 거의 전량을 수출에 의존했지만, 타조고기가 고급육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시작했다.
현재 뉴질랜드에선 배씨의 타조고기(1㎏ 가격 한화 약 3만원)가 소고기(1㎏ 1만8000원 선)보다 훨씬 비싸게 팔린다.
그는 고기를 파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타조 가죽, 타조 오일 등 가공품을 개발하고 최근엔 타조농장 견학코스를 팜 투어(farm tour) 관광상품으로 개발, 짭짤한 가외소득까지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배씨의 타조 농장을 다녀간 관광객은 무려 2만여명. 배씨는 “지난해 고기판매로만 1억원 이상의 순익을 올렸는데, 관광수익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