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에 미친 남자

오스템임플란트 최규옥 대표
10년만에 국내 평정, 10년 후엔 세계 1위 야망
"반도체조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등이다. 조만간 임플란트도 '1등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창업 10년만에 국내 치과용임플란트 시장을 석권한 오스템임플란트의 최규옥(46사진) 대표의 말이다.
임플란트란 티타늄으로 특수 제작한 인공 치아 뿌리를 말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산이 국내 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오스템임플란트가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첫 제품은 임플란트가 아니라 치과 업무용 소프트웨어다.
최 대표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서울 강남에 개업을 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시중에 나온 치과용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느껴 직접 개발에 나선 것이 사업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97년 '디앤디(D&D)시스템'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두번에'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았다. 이 소프트웨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두 번의 과정만으로 진료차트 정리, 보험청구, 회계 처리, 영상 관리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두번에'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최 대표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임플란트는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최 대표는 임플란트를 시술하면서 '좀 더 값싸게, 좀 더 편리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하고 궁리했다. 특히 임플란트 수입업체들이 영세한 나머지 걸핏하면 문을 닫던 때였다. 2000년 경영난을 겪고 있던 국내 최초의 임플란트 제조업체 '수민종합치재'를 사들여 회사 이름을 오스템임플란트로 바꿨다. 하지만 초기엔 사업이 잘 안풀렸다. 제품에 대한 시장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이 때부터 최 대표는 영업사원 1~2명과 함께 직접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녔다. 의사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임플란트를 팔아야만 회사가 살아 남을수 있었다. 최 대표는 "치과의사나 할 걸 괜한 짓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의사에 대한 교육이었다. 이 회사가 시장에 진입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많지 않았다. 임플란트 시장 역시 크지 않았다. 그래서 2001년 서울 삼성동에 임플란트 연수센터(AIC)를 세웠다. 치대 교수들을 초빙해 임플란트를 비롯한 최신 치과 기술을 무료로 교육했다.
최 대표는 "체계적인 임플란트 임상 지식이 보급되면서 지금은 국내 개업의중 70%가 시술을 한다. 미국.일본이 10%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라며 "따지고 보면 내가 하는 일은 제조업이 아니라 의료 교육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AIC는 치과 개업의들이 몰리자 지금은 유료로 가르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매출을 1000억원(2006년 매출 전망치 1122억원)이 넘게 올리는 회사가 됐다.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107%에 달한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 투자에 쓴다. 적잖은 연구개발 성과도 거뒀다.
2002년 8월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식품의약청(FDA)의 최고 등급인 '클래스-3'를 받았다. 제품의 안전성과 우수한 품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임플란트용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고 있고, 임플란트가 뼈에 더 잘 붙을 수 있도록 하는 인체 친화적 표면처리 기술도 연구 중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최근 또 다른 꿈을 세웠다.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일본.중국 등 12개국에 둥지를 튼 해외 영업소(30개)를 2010년까지 해외법인 50개, 영업소 37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에 3만5000평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8월부터는 현지 공장에서 제품이 나온다. 최 대표는"오스템임플란트는 10년후(2016년)에 매출액 1조원을 올리는 세계 1위의 임플란트 업체로 올라 설 것"이라고 말했다.
글=석남식 이코노미스트 기자 stone@joongang.co.kr
사진=강욱현 기자
2006.12.2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