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상술로 유대인과 중국인 사로잡은 한상(韓商)

권 사장은 가장 즐거운 때에 대해 내 아이디어로 새 옷을 기획해서 납품해 매우 잘 팔린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라고 답한다. 평생을 일만 해온 그다운 답변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은 대학생이 되었고 아내와 두 딸이 모두 건강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한다. 그는 이제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매장도 있고 한국과 중국에 사무소도 갖춘 성공한 재미동포 기업인이 됐다.
▲ 뉴욕의 차이나 타운
권 사장은 국제 거래를 하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한국인의 위상에 대해 느끼는 점이 많다. 특히 중국을 들락날락 하면서 조선족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가 재미동포와 한국인, 조선족에 관한 에피소드를 꺼낸다.
중국 무역을 10여년 정도 하다가 3년 전에 상하이에 지점을 열었다. 그리고 한국인 직원 2명, 조선족 직원 6명을 채용했다. 한국인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근면성 때문에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열심히 일한다. 리갈웨어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인 거래업체가 재미동포와 한국인, 조선족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재미동포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대하고 말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서울에서 온 한국인들의 말도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조선족은 차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권 사장은 같은 한국 핏줄인 데도 대접이 다른 이유에 대해 내가 사장이라는 점도 있지만 미국인에 대한 우대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선족은 중국인들의 평균임금보다 3~4배 많은 월 1000달러씩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푸대접하는 걸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권 사장은 중국 내 조선족들의 생활을 보면 20여년 전 첫 이민 시절에 미국 백인들이 한인 동포 12세들을 푸대접 하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족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한국 경제가 번성하려면 결국 중국 경제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고 이를 성공시키려면 조선족과 힘을 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의 지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중국사회에서 점점 대우가 개선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권 사장은 조선족의 지위 향상은 결국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최근 미국 업체들이 저임금을 노리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해도 지금처럼 그냥 중국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권 사장은 비즈니스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신뢰와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말한다. 국제 비즈니스맨답게 이에 대한 설명도 국제적이다.
몇 년 전 중국의 저가 고품질 섬유가 몰려들어 미국 섬유업체들이 망해가자 미국 정부가 긴급수입제한 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했지요. 그래서 중국산 수입이 중단되자 월마트와 JC페니 등 미국 소매업체들이 공급망을 인도와 파키스탄 등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제품의 경우 중국보다 가격은 낮아도 품질은 중국을 따라오지 못해요. 그래서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자 미국 정부가 다시 세이프가드를 철회하고 중국의 쿼터를 늘렸죠. 그러나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는 미국 소매업체들이 중국 리스크 때문에 거래선 회복에 주저하고 있어요.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 미국이 신뢰를 상실하는 바람에 윈윈 전략에 실패한 거죠.
권 사장의 꿈은 자신의 자녀를 포함해 한인 2세들이 미국 사회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자신이 중국 사업에서 조선족과 동맹관계를 맺듯이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도 점점 성장하는 미국 교민 사회의 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포 2~3세들은 1세들이 고생해 이룩한 부(富)를 바탕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아 주류사회에 적극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포들이 미국의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인 핏줄끼리 믿고 도와주는 것이 윈윈 전략이 되는 시대가 온 거죠.
뉴욕= 김기훈 조선일보 특파원
kh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