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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매사냥’을 만나다 |
야생매를 길들여 사냥감을 잡는 ‘매사냥’을 아시나요? 최근 일 관계로 대전무형문화재이자 매사냥 기능보유자인 박용순 응사를 대전 동구 이사동에 위치한 고려응방에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보라매는 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털을 갈아 흰색에 검은 무늬가 있는 매는 수진이(사람의 손으로 길들인 매)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그리고 송골매도 보여주셨는데, 눈이 까만 것이 너무 예쁘게 생겨서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야생매를 잡아 사냥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게 아닌데요. 야생매를 잡는 것도 힘들거니와 처음에 매를 잡으면 야생성 때문에 절대 사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삼일을 굶겼다가 첫밥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의 발에 줄을 매달고서 응사에게 날아와 먹이를 먹는 줄밥훈련을 시작하는데, 처음엔 짧은 거리부터 차근차근 먼 거리까지 완수하고 나면 매와 응사의 마음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져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길들인 매가 직접 들판에 데리고 나가 매사냥에 성공하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어렵사리 길들인 매도 약 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내야합니다. 야생성이 죽지 않는 매의 기질을 존중하기 때문인데요, 또 자연 친화적인 사냥법이기 때문에 길들인 매라고 할지라도 평생을 함께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매사냥 그림이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매사냥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도 오랜 옛날부터 매사냥이 성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층 사이에 매사냥이 유행해 매의 사육과 매사냥을 담당하는 관청인 응방을 두기도 했구요. 일제강점기에는 민간으로 확산돼 서민들까지 매사냥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매사냥은 1960년대까지 전국에 그 풍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제는 수렵기구의 발달로 점차 그 전통이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자연이 주는 만큼만 얻어갈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사냥법, 매사냥은 충분히 보호하고 지켜나가야할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세계유네스코에서 매사냥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시킨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용순 응사는 지난 2000년 매사냥으로 대전시 무형문화재 8호에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늘 매와 동고동락해왔습니다. 먹이를 주고 밤낮으로 함께해야하는 매의 특성상 다른 일과 병행하기가 힘들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었습니다.
야생매를 잡아 길들이고, 또 매사냥을 성공하기까지 힘든 일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매사냥이 명맥을 유지하려면 그에 걸맞는 환경을 만드는게 가장 시급하다고 합니다. 현재 무형문화재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한달에 약 80만원 가량.
그 돈으로는 매들이 먹어치우는 닭값도 안된다는게 박용순 응사의 말입니다. 보조금 가지고는 전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또한 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기 때문에 무형문화재가 아닌 이상 매를 소유하거나 키우는 것도 금지되어있어 후계자 양성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매사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전통이 이어질 수 있게끔 기반을 마련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매사냥 보존과 전수를 위해 노력하는 대전무형문화재 박용순 응사.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매를 좋아하고 매사냥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하기 힘든 일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경제적 걱정 없이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 또한 컸습니다.
아무쪼록 박용순 응사의 바람대로 세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매사냥이 그에 걸맞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 빨리 조성되길 바랍니다. |
Source: http://kr.blog.yahoo.com/bc703/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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